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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백신 생산국 먼저 접종, 어쩔 수 없어"...'팩트 오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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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백신 생산국 먼저 접종, 어쩔 수 없어"...'팩트 오류' 논란

입력
2020.12.23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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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끝까지 개발"→"과하게 확보"
뒤늦게 방향 전환 실책 논란?
당정청 다른 목소리로 '백신 불안' 가중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5부요인 초청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5부요인 초청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다른 나라보다 특별히 늦지 않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백신 도입이 늦어진다는 비판에 대해선 “백신 생산국이 먼저 접종받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했다. 백신 생산국이 아닌 아시아ㆍ중동ㆍ중남미 국가에서 이미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는 것과 팩트가 다른 발언이었다. 문 대통령은 또 "우리는 방역 모범국가"라고 자평했다.

비(非) 생산국도 백신 확보·접종 시작했는데

문 대통령은 청와대 5부 요인 초청 간담회에서 “요즘 코로나19 백신 때문에 걱정들이 많다”며 "백신을 생산한 나라에서 많은 재정 지원과 행정 지원을 해서 백신을 개발했기 때문에 먼저 접종하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일"이라고 했다.

백신 제약 회사가 있는 미국(화이자)ㆍ독일(바이오엔태크)ㆍ중국(시노팜) 등에 비해 접종이 늦는 것은 불가피하므로, 결과적으로 정부의 백신 대응에 결정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였다. 백신 확보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정부를 '믿어 달라'는 메시지도 발신했다.

하지만 백신 생산국이 아닌데도 백신을 확보했거나 접종을 시작한 나라들이 적지 않다. 신상진 국민의힘 코로나19특별대책위원장은 "이달 또는 내년 1월 접종 예정인 싱가포르, 일본, 호주, 캐나다, 멕시코, 칠레 등은 백신 생산 회사가 없는데도 백신을 선구매 했다"며 "백신 확보를 못 한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청와대가 자체 백신 개발에 희망을 걸다가 백신 확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도 있다. 22일 청와대가 공개한 문 대통령의 백신 관련 발언록을 보자.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 바이오 의약 수준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4월 14일) "국립보건연구원 산하에 국립감염병연구소를 신설, 백신 개발 지원으로 감염병 대응 능력을 높여 달라"(9월 8일) 등 한동안 국내 백신 개발에 방점을 찍었다.

이어 “글로벌 제약사 등을 통해 충분한 양의 백신을 확보해 두라”(9월 15일) “과하다고 할 정도로 물량을 확보하라. 대강대강 생각하지 마라”(11월 30일)며 백신 확보로 방향을 틀긴 했지만, 주요국의 ‘백신 확보 전쟁’이 이미 지나간 뒤였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22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백신으로 집단 면역력을 확보하는 게 전염병의 중장기 전략인데, 우리는 이런 전략이 없었다"며 "(정부가) 백신 확보 필요성을 덜 중요하게 느낀 것”이라고 꼬집었다.

文 "우리는 방역 모범국가"

문 대통령은 또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방역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아주 모범 국가로 불릴 정도로 잘 대응을 해왔다”며 “앞으로도 우리 국민들의 높은 시민의식과 공동체의식으로 코로나를 잘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20일 기준 한국의 10만명당 누적 확진자 수는 97.8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36위번째였다. 'K방역'의 효과는 수치로 입증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발언엔 ‘겨울철 3차 확산’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해 하루 확진자가 1,000명 안팎으로 치솟고 22일 기준 누적 사망자가 722명에 달한다는 점, 전문가들의 끈질긴 주문에도 병상ㆍ의료인력 부족을 방치한 점 등 방역 실책은 빠져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가을과 겨울의 코로나19 대유행에 대비한다고 하더니, 정부와 방역당국이 무엇을 한 것인지 정말 원망스러울 정도”라고 했다.

당정청, 다른 목소리로 방역 신뢰 훼손

청와대와 정부ㆍ여당에서 ‘엇갈린 메시지’가 나온다는 따가운 시선도 있다.

청와대 메시지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22일 브리핑에서 "과하다고 할 정도로 (백신) 물량을 확보하라. 대강대강 생각하지 마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하며 "정부는 백신 접종 시기를 최선을 다해 앞당길 계획으로, 추가 물량 확보와 접종 시기 단축을 위해서 모든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0일 방송 인터뷰에서 “지난 7월 백신 태스크포스(TF)팀이 가동될 때는 국내 하루 확진자가 100명 정도라 백신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고 했다. 정부의 판단 실수를 우회적으로 사과한 것으로 해석됐다.

반면 민주당은 백신 도입 늑장 논란을 일축했다. 이낙연 대표는 21일 "야당이 (백신을 고리로)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고 있는데, 이는 민생 안정을 해친다"고 했고, 22일엔 "일부 언론이 과장됐거나 왜곡된 보도를 서슴지 않는다"며 언론에 책임을 돌렸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21일 “알러지 반응과 안면 마비 등 백신 접종 부작용이 보도되고 있다"며 "안정성을 검증하고 접종하는 게 정부 원칙”이라고 했다.

백신 대처를 두고 당ㆍ정ㆍ청이 다른 목소리를 내면 국민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김우주 교수는 “백신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면 접종 참여율이 낮아지는 문제가 생긴다”며 “'K방역이 잘되고 있다' '백신 안전성이 중요하다' 같은 정치권 목소리들도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짚었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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