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장교와 YG 출신이 만든 영상 스타트업
천안함 사태로 운명 바뀐 박현우 대표와 YG 출신의 윤무철 부대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가 급격하게 증가한 동영상 이용이다. 사람들은 극장을 가거나 외부 활동을 하기 힘든 비대면 상황에서 손쉽게 볼 수 있는 인터넷의 영상 콘텐츠에 빠져들었다.
기존 방송 외에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까지 등장하면서 치열한 영상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영상 플랫폼 업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개성 강한 자체 콘텐츠다. 똑같은 영상을 여러 군데서 내보내는 것은 이용자 확보에 큰 도움이 되지 않기에 독점 콘텐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디지털 영상 콘텐츠 제작사인 신생기업(스타트업) 프리콩이 주목받는 이유다. 그래서 프리콩은 오히려 코로나19 상황에서 희망을 본다.
천안함 사태가 바꾼 운명
프리콩이라는 이름은 낯설어도 이들의 작품을 아는 사람들은 많다. 아이돌 그룹 에이핑크의 윤보미, 배우 이태환 등이 출연해 농수산대학 학생들 이야기를 다룬 미니 드라마 ‘농부사관학교’, 가수 이수현과 권현빈, 배우 황승언 등이 아이돌 생활을 소개한 웹 드라마 ‘비정규직 아이돌’, 인터넷 영화 ‘개들의 침묵’, 개그우먼 홍현희가 진행한 웹 예능 ‘악마는 란제리를 입는다’, 배우 김소현의 미국 여행기 ‘스무살은 처음이라’, 하하가 출연한 웹 예능 ‘한밤의 레게 연예’ 등이 모두 프리콩 작품이다. 독특한 소재와 참신한 내용으로 화제를 뿌린 작품들이다.
등장한 출연진도 유명 스타들이고 장르도 드라마부터 영화, 예능까지 다양하다. 모두 인터넷에 공개된 영상이지만 일부는 지상파 방송, 케이블TV, OTT 등 다양한 플랫폼에 각각 방영돼 인기를 끌었다. 그만큼 눈에 띄는 영상들이 많다.
직원 6명의 스타트업에서 유명 스타들이 줄줄이 출연하는 화제의 영상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박현우(33) 대표와 윤무철(40) 부대표의 남다른 경력이 한 몫 했다.
원래 박 대표는 캐나다 영주권자였다. 밴쿠버에서 살던 2010년 TV 뉴스를 보고 천안함 사태를 알게 됐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봤어요. 이 순간에 캐나다에서 취직할 게 아니라 무엇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캐나다 영주권을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왔죠.”
그 길로 해군 학사장교를 지원한 박 대표는 1함대 사령부에서 정보장교로 근무했다. “군 근무가 인연이 돼서 카이스트 정보경영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거기서 디지털 미디어와 콘텐츠에 관심을 갖게 됐죠.”
이후 박 대표는 특이한 계기로 동원그룹에 입사했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장보고에 대한 글을 신문에 기고했는데 해군 장교로 근무하며 고민한 생각들과 비슷했어요. 김 명예회장에게 이런 뜻을 전달했는데 만나자는 연락이 왔어요.” 이를 계기로 박 대표는 동원그룹 경영지원실에서 근무하게 됐다.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고 생각을 행동에 옮기는 박 대표가 두 번째로 관심을 가진 것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었다. 그래서 옮긴 곳이 엉뚱하게도 배우 이준기의 소속사 나무엑터스였다. 그는 미국 영화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에 출연한 이준기를 따라 촬영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갔다가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할리우드의 제작 시스템에 강한 인상을 받았어요. 그때 영상 콘텐츠에 푹 빠져서 2017년 스크립토나이츠라는 영상 제작사를 창업했죠.”
YG 출신의 윤 부대표를 만나다
그때 알게 된 사람이 유명 연예기획사 YG에서 일한 윤 부대표다. 스스로 "성격이 급하다"고 밝힌 윤 부대표는 대학에서 부동산학을 전공하던 중 빨리 돈을 벌고 싶어서 대학을 중퇴하고 부동산 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돈 버는 일이 쉽지 않았다. “큰 건물을 팔았는데 수중에 들어온 돈이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정수기와 보험 판매원 등 다양한 일을 했어요.”
윤 부대표는 패션업체로 이직하며 영상과 인연을 맺었다. “패션업체들의 후원을 받아 미국 뉴욕에서 패션 관련 동영상을 만들며 영상 콘텐츠의 매력을 알게 됐죠. 덕분에 YG와 인연이 닿았어요.”
2012년 윤 부대표는 YG 계열사인 YG 케이플러스에 합류했다. “모델 양성 등을 하던 YG 케이플러스에서 미디어본부장으로 4년 가량 일하며 가수 산다라박이 출연한 웹드라마 ‘우리 헤어졌어요’ 등을 만들었죠.”
이를 눈여겨 본 박 대표는 2017년 윤 부대표에게 제의해 가수 이수현, 배우 김민교 등이 출연한 가짜 다큐멘터리 ‘비정규직 아이돌’을 만들었다. 이 작품이 프리콩 탄생의 모태가 됐다. “아이돌로 성공하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그린 작품인데 넷플릭스에서 관심을 갖고 사갔어요. 대박이었죠.”
이들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넷플릭스 뿐만이 아니었다. 독자 콘텐츠가 필요했던 인터넷 방송 플랫폼 아프리카TV가 스크립토나이츠에 지분 투자를 제의했다. 마침 작품을 만들며 의기투합한 윤 부대표의 영입도 함께 진행됐다. “지분 투자와 윤 부대표의 영입이 동시에 일어났어요. 톡톡 튀는 콘텐츠에 대해 고민하던 정찬용 아프리카TV 대표와 생각이 겹치는 부분이 많았어요.”
2017년 아프리카TV는 과감한 투자로 스크립토나이츠의 지분 85%를 확보했다. 나머지 지분은 박 대표가 갖고 있다. “아프리카TV의 투자를 계기로 사명을 프리콩으로 바꾸면서 아프리카TV 관계사가 됐습니다. 자유롭게 콘텐츠를 만드는 프리 콘텐츠 그룹이라는 의미를 담았죠.”
“영상 콘텐츠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
박 대표는 프리콩을 설립하며 “앞으로 영화가 극장에서만 개봉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의 예상은 코로나19 때문에 빨리 현실이 됐다. 요즘 할리우드 영화들은 코로나19 이후 미국 극장들이 문을 닫자 OTT 개봉에 더 힘을 쏟고 있다.
박 대표는 2017년 인터넷 상영을 위한 20, 30분 분량의 웹 영화 10여편을 ‘디렉터스 TV’ 시리즈로 제작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공동 제작한 루이스픽처스와 ‘디렉터스TV’를 공동 제작했죠. 신인 감독들이 만든 ‘개들의 침묵’ ‘기생충’ ‘서식지’ 등이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박 대표가 강조하는 것은 독자 콘텐츠의 힘이다. 이를 위해 그는 젊은 직원들의 생각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생각보다 어린 직원들의 감각을 믿는다. “나이 어린 직원들의 디지털 감성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저나 윤 부대표는 이야기에 기승전결을 넣으려고 하는데 어린 직원들은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아요.”
“영상 콘텐츠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고 믿는 박 대표는 콘텐츠 기획회의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젊은 직원들에게 전권을 주기 위해서다. “신입 사원들이 중심이 돼서 진행한 영상들이 많아요. 이런 영상을 왜 보지? 이런 영상을 왜 좋아할까? 영상을 보면 이런 의문이 드는데 인터넷에서 빵빵 터지거든요. 기존 제작문법과 다른 디지털 콘텐츠는 법칙이 없어요.”
“우리는 콘텐츠 편의점…신년 영화 등 준비”
프리콩은 콘텐츠 제작 아이디어를 이용자나 기업, 학교 등 외부에서도 얻는다. “서울과학기술대에서 코로나19로 학교 축제를 하지 않았는데 관련 예산이 어떻게 쓰였는지 궁금하다며 의견을 줘서 관련 영상을 만들기도 했어요. 만드는 과정에 학생들이 참여했고 이 영상 덕분에 취업까지 이어졌죠.”
이런 아이디어들은 회사 매출로도 이어진다. “화장품 업체, 게임 개발사 등과 손잡고 영상을 제작했어요. 가수 UV가 등장해 선크림을 파는 ‘UV 얼마까지 보고 오셨어요’, 개그우먼 홍현희가 디자이너로 등장해 속옷을 만들어 티몬에서 판매한 ‘악마는 란제리를 입는다’ 등에서 라이브 커머스를 시도했습니다.”
최근에는 제작지원(PPL)을 경매 방식으로 진행해 화제가 됐다. “하하가 진행한 웹 예능 ‘한밤의 레게 연예’에서 PPL을 경매로 진행해 제작비용을 확보했어요. 하하는 출연 뿐 아니라 제작 감독으로도 참여했어요.”
덕분에 매출은 2018년부터 매년 약 40%씩 성장하고 있다.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지만 매출이 매년 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콘텐츠 판매가 가장 큰 수입원이고 기업들과 협업, PPL, 라이브 커머스 등을 통해 추가 수익을 올리죠.”
윤 부대표는 프리콩의 장점을 뛰어난 기획력으로 꼽았다. “3년 동안 여러 작품을 만들면서 큰 회사가 아니어서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큰 회사는 조직별로 분화돼 있어서 큰 그림을 그리기 힘든 경우가 있어요. 반면 우리처럼 작은 조직은 융통성이 좋고 기민하죠.”
박 대표는 프리콩을 “콘텐츠 편의점”이라고 표현했다. “일부에서는 너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든다며 비꼬는 의미로 편의점이라고 해요. 하지만 단점을 최대한 장점으로 만들 수 있는 우리에게는 그 말이 곧 칭찬이에요.”.
프리콩은 내년에도 독특한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 몇 편의 작품을 준비 중이다. 박 대표는 라이브커머스 관련 기획을 소개했다. “하하, 개그맨 박명수씨 등이 출연하는 비디오 커머스, 아프리카TV의 개인방송 진행자(BJ)들이 출연해 수익을 나누는 라이브 커머스 등을 준비 중입니다.”
윤 부대표는 영화 제작 계획도 밝혔다. “일본 유명 광고회사 덴츠가 투자한 일본 만화 ‘살롱’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아프리카TV BJ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드는 다큐멘터리와 웹무비도 검토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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