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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의 시간' '반도' '다만'... 2020 화제작이 전하는 메시지

입력
2020.12.30 07: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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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좋아하는 감독, 좋아하는 배우를 영화 한편만으로는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영화와 저 영화를 연결지어 영화에 대한 여러분의 지식의 폭을 넓히고 이해의 깊이를 더하고자 합니다.

영화 '사냥의 시간' 속 가까운 미래 한국은 경제 붕괴로 지옥이나 다름 없다. 넷플릭스 제공

영화 '사냥의 시간' 속 가까운 미래 한국은 경제 붕괴로 지옥이나 다름 없다. 넷플릭스 제공

※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올 한 해를 대표하는 한국 영화를 꼽으라면 망설여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관객과 만난 영화가 워낙 적어서다.

코로나19가 극장가를 덮친 이후 공개된 충무로 화제작이라면 ‘사냥의 시간’과 ‘반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들 수 있겠다. 공교롭게도 세 영화는 공통점이 있다. 화면 속 한국은 더 이상 사람이 온전하게 살 수 없는 곳이다.

‘사냥의 시간’은 경제가 붕괴한 미래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네 청춘의 사투를 담았다. 불 꺼진 거리, 낙서로 도배된 퇴락한 건물들이 ‘디스토피아 한국’을 상징한다. “우리,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냥의 시간’의 포스터 문구다. 젊은 주인공들이 한국을 떠나서 가고 싶어하는 곳은 대만이다. 영화에서 지상낙원으로 곧잘 소환되는 남태평양 조그만 섬과는 거리가 멀다. 청년들의 소박한(하지만 이뤄지기 너무나 힘든) 소원은 희망 없는 영화 속 한국을 부각시킨다.

‘반도’ 속 한국은 ‘사냥의 시간’보다 더 잔혹한 공간이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해 4년 동안 출입이 금지된 폐허로 묘사된다. 좀비들이 점령한 도시에는 좀비 못잖게 잔혹한 인간 사냥꾼까지 있다. 한 때 사람이었던 존재들을 차로 쓸어내야만 살 수 있는 생지옥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좀 더 현실적이다. 정보기관 요원이었던 인남(황정민)은 조직 내부 권력 투쟁에서 밀려 한국을 떠난다. 그에게 한국은 연인마저 두고 벗어나야 하는 죽음의 땅이다. 인남은 카리브해 지역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한다.

영화 '반도'의 주인공 장석은 한반도를 탈출해 홍콩에 도착하나 냉대와 차별, 가난이 그를 기다린다. NEW 제공

영화 '반도'의 주인공 장석은 한반도를 탈출해 홍콩에 도착하나 냉대와 차별, 가난이 그를 기다린다. NEW 제공


한국을 떠나 그나마 안락하게 살 수 있을까. 삶은 여전히 또는 더 고단하다. ‘사냥의 시간’의 준석(이제훈)은 대만에 머물게 되나 한국에 두고 온 친구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린다. ‘반도’의 장석(강동원)은 한반도 탈출에 성공한 몇 안 되는 행운아지만, 홍콩에서 밑바닥 생활을 한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인남은 일본에서 청부살인을 호구지책 삼아 살아간다.

주인공들은 한국을 벗어났으나 한국과 인연을 끊을 수 없다. 준석은 생사불명 친구를 구하기 위해 한국으로 향한다. 장석은 새 삶의 발판을 마련하려 반도로 잠입한다. 인남은 존재조차 몰랐던 핏줄이 납치된 사실을 알고 태국으로 향한다. ‘지옥 한국’을 진정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국 한국과 마주해야만 한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인남은 한국과 인연을 끊었다고 생각하나 한국이라는 현실은 불쑥 그의 삶에 다시 끼어든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인남은 한국과 인연을 끊었다고 생각하나 한국이라는 현실은 불쑥 그의 삶에 다시 끼어든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의 주인공 퓨리오사(샬리즈 시어런)는 잔혹한 가부장적 독재자 임모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미지의 이상향으로 향한다. 유토피아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독재자의 소굴로 돌아가 맞서 싸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이런 문구로 끝맺는다. “희망 없는 세상을 방황하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온전한 삶은 우리가 머무는 바로 이곳에서 투쟁하고 성취해야만 가능하다는 암시다. ‘사냥의 시간’과 ‘반도’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의도치 않게 전하는 메시지도 비슷하지 않을까. 코로나19로 일상이 파괴된 시대, 결국 맞서 싸워 극복할 수밖에 없다. 내년 세계도, 한국사회도, 영화들도 현실이라는 전투에서 승리하기를.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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