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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노동에 지친 노년 "천대하는 시선만이라도 없으면..."

입력
2021.01.04 04:30
수정
2021.01.04 09:57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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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년은 취업 불가, 노년은 은퇴 불가

편집자주

2030·6070세대는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청년·노년을 사는 첫 세대다. 일자리·주거·복지에서 소외를 겪으면서도 ‘싸가지’와 ‘꼰대’라는 지적만 받을 뿐, 주류인 4050세대에 치여 주변부로 내밀린다. 세대간 공정을 바라는 이들의 목소리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작은 외침이다.

구자혁씨가 지난달 24일 경기 안양시의 한 아파트에서 분리수거 작업을 하고 있다. 왕태석 기자

구자혁씨가 지난달 24일 경기 안양시의 한 아파트에서 분리수거 작업을 하고 있다. 왕태석 기자


서울의 한 빌딩에서 청소 업무를 하는 박소영(66)씨는 손으로 변기 22개를 닦고서야 겨우 허리를 펴고 한숨을 돌렸다. 오전 6시부터 3개 층을 돌아다니며 화장실을 치우고, 사무실 곳곳을 닦으며, 쓰레기통을 비우는 것이 그의 일이다.

19세. 서울로 온 그때부터 한시도 일을 쉬어본 적 없다. 속옷회사, 문구점, 비디오점에서 일했고, 새벽 우유 배달도 마다하지 않았다. 65세를 넘겨 정부가 인정하는 '노인'이 되었지만 청소일을 끝낼 수 없었다. 국민연금 22만원과 기초연금 16만원으로는 입 하나도 풀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을 놓을 수 없는 고달픈 노년들

60대와 70대는 '편안한 노후'를 누려야 할 시기다. 그럼에도 이 땅의 상당수 6070에게 '노년의 안식'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연금이나 비(非)노동소득만으로 생계를 감당할 수 없어, 일거리를 찾아 헤매야 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남성 노인이 일을 손에서 놓는 연령은 평균 72.3세로, OECD 평균(65.4세)보다 7년을 더 일해야 한다. 여성 노인 역시 평균 72.3세까지 일해, OECD 평균(63.7세)보다 9년이나 길다. OECD 국가 중 연간 노동시간이 두 번째로 긴 한국인들은, 일에서 해방되는 연령 역시 OECD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박소영씨가 지난달 21일 서울 영등포구 한 빌딩 남자화장실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박소영씨가 지난달 21일 서울 영등포구 한 빌딩 남자화장실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더 심각한 건 이렇게 나이 들어 일해도 생계가 나아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노인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청소, 경비, 단순 노동 등 급여가 낮은 일자리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OECD 소득빈곤율 통계를 보면, 한국 노인 중 43.8%가 중위소득 50% 미만의 수입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이 비율은 OECD에서 가장 높다.

경기 안양시에서 10년째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구자혁(68)씨도 정년 퇴직 후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건설회사 관리직으로 32년 일하며 부은 국민연금이 매달 130만원 나오지만, 전업주부인 아내와 함께 생계를 꾸리려면 다른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의도 증권가 빌딩에서 청소를 하는 서윤정(67)씨도 그랬다. 서씨는 남편이 하던 사업이 어려워지자 생활 전선에 나섰다. 15년 동안 새벽 4시 10분 첫차를 타고 와 일한 직장이지만, 이 곳에서도 정년 때문에 곧 일을 그만둬야 할 처지다. 경기 고양시 임대아파트에서 8년째 경비원을 하는 정모(71)씨도 아내와 합쳐 70만원 정도 국민연금을 받는 게 소득의 전부다. 최저임금을 받더라도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차별 어린 시선에도 "꾹 참고 일할 수밖에"

지난달 24일 경기 안양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경비 노동자 구씨의 모습. 왕태석 기자

지난달 24일 경기 안양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경비 노동자 구씨의 모습. 왕태석 기자

한국 노년층의 빈곤은 삶의 질마저 위협할 수준으로 심각해졌다. 주요 국가 중 가장 소득수준이 열악한 한국의 노인 자살률(10만명당 37.1명)은 OECD에서 가장 높고, 스스로 느끼는 건강상태에 대한 긍정적 응답률도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일터에서 버티는 노년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이웃들의 모멸적 시선과 뿌리 깊은 갑질이다. 빌딩에서 청소 업무를 하는 박소영씨는 이제 바닥만 보고 일하는 게 익숙해졌다고 했다. 청소 복장을 하고 장갑을 낀 박씨는 평소엔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지만, 부득이하게 일반 엘리베이터를 타는 날엔 괜히 움츠러든다고 한다. 박씨는 "어떤 직원은 팔을 스치자마자 바로 외투를 툭툭 털었다"며 "내 힘으로 벌어 산다는 점에선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사람들이 천대하는 것은 뼈저리게 느낀다"고 목이 메였다.

경비 노동자들 상황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업무도 고되지만, 주민들 '심기'를 살피는 게 더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구자혁씨가 일하는 아파트에선 청소 인력이 따로 없어 일주일에 3번 시행하는 분리수거를 경비원이 전담한다. 주민들에게 "쓰레기를 제대로 버리셔야 합니다"라고 쓴소리를 했던 동료는 재계약에서 탈락했다. 구씨는 "불안 속에서 일하는 게 일상이 됐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몸 허락할 때까지 일 찾아 전전”

박씨가 지난달 21일 서울 영등포구 한 빌딩의 청소 노동자 휴게소에서 일터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박씨가 지난달 21일 서울 영등포구 한 빌딩의 청소 노동자 휴게소에서 일터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노년 일자리가 대부분 최저임금이지만, 이들은 이런 일자리마저 남에게 내줘야할 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노년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이라 나가라고 하면 속절 없이 그만 둬야 하는 경우가 많다. 대구의 3년차 경비 노동자 김영철(68)씨는 "75세까지 일하고 싶지만, 그 때까지 잘리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불안해 했다. 여의도의 서윤정씨도 "용역업체가 바뀔 때마다 정년, 근무 요건이 달라진다"며 "70세 이상 일하는 게 목표지만, 몸이 허락해 줄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떨궜다.

빌딩 청소노동자 박소영씨는 걸레질을 하다 말고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충남 공주시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남편은 지난달 중순 해직 통지서를 받았고, 박씨 자신도 연이어 계약 종료를 통보받았다. 박씨는 "이 상황에서 나가라는 건 죽으라는 것과 같다"라며 "이제 우리 부부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울먹였다. 일을 얻으려면 얻을 수야 있겠지만, 지금 하는 청소 일보다 더 낮은 근로 조건을 감수해야 할 게 뻔하다.

6070 세대는 노인 일자리 확충과 복지 확대를 바란다. 그러나 취직도 못하는 자식 세대가 처한 상황을 보면 자기들 몫을 큰 소리로 주장하기도 쉽지 않다. 서울의 한 호텔에서 청소 업무를 하는 최모(61)씨는 "세상에 첫발조차 떼지 못한 아이들을 앞에 두고, 힘든 내 사정을 토로하려니 '꼰대'인 것 같아 꾹 참는다"며 "현실도 정책도 양 세대를 돌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진웅 기자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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