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박 전 시장 피소 유출 사건 수사결과 발표
시민단체 고발한 '청와대·검찰·경찰'은 무혐의
여성단체와 여당 의원, 서울시 젠더특보에 유출
"여성계가 피해자 인권 되레 침해" 비판 목소리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소 관련 내용이 여성단체에서 유출돼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를 통해 박 전 시장에게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권력형 성범죄 의혹과 관련한 진실을 밝히는데 앞장서야 할 여성단체 인사들이 여권 유력 정치인의 피소사실 유출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부장 임종필)는 30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박 전 시장 피소 사실 유출 의혹 관련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 수사는 피해자 측이 지난 7월 '경찰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 박 전 시장에게 피소사실이 전달됐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당초엔 청와대가 경찰로부터 박 전 시장의 피소 사실을 보고 받은 사실이 드러난데다, 피해자 측이 경찰 고소 전에 검찰에 면담을 요청한 일까지 밝혀지며, 검·경과 청와대를 향한 시민단체의 고발이 잇따랐다.
하지만 검찰 수사결과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소 관련 내용은 청와대와 검·경이 아닌, 여성단체→여당 국회의원→임 특보를 통해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측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여성단체 대표에게 전화했고, 그 내용이 다른 여성단체 쪽으로 흘러들어간 뒤 남 의원과 임 특보를 통해 박 전 시장에게 전달된 것이다. 남 의원과 임 특보는 모두 여성계 출신으로, 임 특보는 남 의원실에서 보좌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남 의원은 박 전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뒤 "박 전 시장에 대한 피소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고, 민주당이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규정하도록 하는데 핵심 역할을 했다.
김재련 변호사→여성단체 2곳→남 의원→임 특보→박 전 시장
검찰 수사와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피해자를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는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하기 전날인 지난 7월 7일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에게 전화해 대략적인 피해 상황을 전달하며 지원을 요청했다. 김 변호사는 고소 예정 사실만 알렸을 뿐, 구체적 사건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경 소장이 이후 여성단체 대표 A씨(7일 오후)에게, A씨는 같은 단체 공동대표인 B씨(8일 오전)에게, B씨는 친분이 있던 남인순 의원(8일 오전)에게 차례로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 남 의원은 B씨와의 통화 직후인 8일 오전 10시 33분 박 전 시장 측근이자 남 의원 보좌관 출신인 임순영 특보에게 전화해 '박 시장 관련 불미스러운 얘기가 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임 특보는 이후 여성계 쪽에 박 전 시장 피소 관련 내용을 확인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임 특보는 8일 오전 10시 39분에 이미경 소장에게 전화해 내용을 확인했고, 이 소장는 '어떻게 알았느냐'는 취지로만 답했다고 한다. 남 의원에게 박 전 시장 관련 내용을 전달했던 B씨는 이날 임 특보에게도 '전화를 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남겼고, B씨는 임 특보와의 통화에서 '여성단체가 김 변호사와 접촉한다'는 취지로 상황을 설명해줬다.
임 특보는 당일 오후 3시쯤 박 전 시장과 독대해 피해자 측 움직임을 직접 전달했다. 임 특보가 '불미스러운 일이 있는 것 같다, 아는 것이 있냐'고 물었고, 박 전 시장은 '없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박 전 시장은 8일 밤 임 특보와 기획비서관을 공관으로 불렀고, 이 자리에서 '피해자와 문자를 주고 받았는데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털어놨다.
박 전 시장은 공관 회의 다음날인 7월 9일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공관에 남긴 메모), '아무래도 이 파고는 내가 넘기 힘들 것 같다'(임 특보에게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 '이 모든 걸 혼자 감당하기 버겁다'(고한석 전 서울시 비서실장과의 통화)는 메시지를 남긴 채 세상을 등졌다.
여성계, 피해자 인권 되레 침해
검찰 수사결과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피소 사실은 피해자 측의 공식 입장을 통해서 알려진 게 아니라, 여성계 인맥을 통한 사적 채널로 유출된 것이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여성단체가 성폭력 사안에 대해 여당 의원과 서울시 특보에게 '내용을 알고 있었느냐'고 물으며 상황을 전달한 것은, 피해자 인권보호와는 거리가 먼 일이다.
서울시의 성폭력 이슈를 책임지는 임 특보가 피해자보다는 박 전 시장 입장에서 움직인 사실을 두고는 특히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임 특보는 응당 취해야 할 피해자 보호 조치 대신에 여러 차례에 걸쳐 여성단체 쪽에 연락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물었다. 8일 공관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는 여성단체 측에 연락해 '무슨일이냐, 좀 알려달라'고 이야기했고, 9일 오전에는 '내가 구체적인 것을 묻는 게 아니라, (준비하는 게) 기자회견인지 고소인지 등 알려주면 안 되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검찰은 그러나 여성단체와 남 의원, 임 특보 등에 대해서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검찰 관계자는 "시민단체는 공무원이 아니고 특보와 국회의원도 자신이 업무를 집행하면서 알게 된 비밀을 알린 게 아니기 때문에 업무상 비밀누설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시민단체가 고발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김욱준 4차장 검사, 유현정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 등에 대해서도 불기소 처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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