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혹스러운 상황인게 뭐냐면, (임신중지 시술이) 합법이라는 전제 하에서 법령 논의가 정리됐다면 그 범위 안에서 논의가 가능한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임신중단과 관련해 급여화 여부만 물으면 건강보험결정심의위원회 안에서도 논의가 공전할 가능성이 높아서 상당히 우려스럽습니다.”
형법상 낙태죄 폐지를 이틀 앞둔 30일 국회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이후, 정책·입법과제 토론회에서 이중규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의 말이다.
이 토론회에서는 ‘낙태죄 폐지 이후’의 사회에서 필요한 다양한 제도와 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오갔다. 임신중단 시술 건강보험 급여화 논의부터 ‘모성보호’를 기본으로 하는 현행 모자보건법의 한계를 지적하며 시민의 성적 권리나 재생산 건강을 보호하는 기본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낙태가 죄가 아닌 세상은 기존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세상인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뒤 이를 대체할 법안 없이 내년부터는 낙태죄만 사라지게 됐다. 낙태가 죄가 아니니 여성이 원하는 경우엔 임신중단 수술을 받을 수 있는데, 당장 임신중단 수술을 어느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건강보험 적용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유산유도약 미프진도 이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논의를 시작한 단계다.
지난 10월, 낙태죄를 유지하되 14주까지는 처벌하지 않기로 한 정부법안의 입법예고 후 첨예한 갈등이 시작됐다. 여성계는 “낙태죄를 결국 존속시키는 법안”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종교계는 “정부안은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이라며 반대입장이다. 여야 의원 입법안도 5건이 나왔다. 하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낙태죄 공청회는 단 한 번뿐이었고, 첨예한 의견 대립은 평행선을 달렸다.
결국 입법 공백 상태에서 낙태죄 없는 2021년을 맞이하게 됐다. 의료현장의 혼란, 당장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의 혼란은 불 보듯 뻔하다. 정부는 낙태를 원하는 여성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의료진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긴급 가이드라인부터 먼저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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