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는 후배는 점심 때면 회사 부근 한 바퀴, 저녁 때면 동네 한 바퀴를 돈다고 했습니다. 서울에 와 있는 자식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마스크라도 구해다 드리는 일뿐이라 괴롭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돌아다녀 봐야 손에 쥐는 건 고작 2, 3장. 혹여 내일 당장 쓰실 게 없을까 봐 모아서도 아니고 매일 매일 부친다고 했습니다.
지난봄 코로나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마스크는 곧 풍성해졌지만 그 대신 표정을, 얼굴을, 만남을 가렸습니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소식도,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도, 벚꽃놀이도, 신입생환영회도, MT도, 봄소풍도, 여름휴가도, 추석도, 가을운동회도, 방탄소년단 빌보드 1위도, 송년회도, 크리스마스 이브도, 그 외 2020년의 소소한 일상 모두를 가렸습니다.
마스크가 드러낸 것도 있습니다. 배달기사의 땀방울, 현장으로 달려가는 간호사, 코로나블루에 한층 취약한 젊은 여성들, 요양병원의 노약자 같은 존재들. 마스크는 그간 가려진 존재들을 드러냄으로써 이 세상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일깨워 줬습니다.
그래서 2020년의 마지막 날은, 이 긴밀한 연결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무너졌을 때 그 마음을 그저 흩어 내버릴 게 아니라 마음을 활짝 열어젖히는 계기로 활용해야 연대와 변화도 가능하다던 어느 미국 교육학자의 말을 떠올려 봅니다. 마스크가 우리 얼굴을 가릴지언정 활짝 열린 마음까지 가릴 순 없음을, 마스크 위로 내놓은 눈빛으로 보여줄 수 있는, 그런 2021년이 되길 기원합니다.
조태성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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