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째 전주 '엄마의 밥상' 책임지는 이문화 영양사
매일 아침, 전주시의 아동 303명의 아침 식사는 특별하다. 전주시에서 운영 중인 '밥 굶는 아이 없는 엄마의 밥상' 사업은 아침을 챙겨 먹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직접 배달한다. 국물 같은 액체가 흐를 염려가 있는 음식을 빼고 고기와 야채 반찬, 때로는 직접 구운 빵과 샌드위치까지, 하루 하루의 식단에 '엄마의 마음'이 가득 담겼다.
이 특별한 아침 식사를 책임지는 '전북외식산업'의 이문화 영양사는 2014년부터 수 많은 아이들과 인연을 이어 오고 있다. 그는 2020년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31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매일 새벽 1시 조리를 시작해 이른 새벽 따뜻한 도시락을 집으로 배달한다"며 "아이들이 든든한 아침 식사를 하게 한다"고 말했다.
'엄마의 밥상'은 전주시가 최소한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아침을 굶거나, 그럴 걱정이 있는 저소득 가정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다. 사업 첫 해인 2014년에는 120세대 183명을 대상으로 시작해 해마다 대상이 늘렸고 2020년에는 300명을 넘겼다.
다른 지방자치단체 중에서도 어린이나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한 아침밥 지원 사업을 하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 쿠폰 지급 등의 방식을 택한다. 쿠폰을 가지고 대상 아동이 바깥으로 나가 식당에서 음식을 먹거나 가게에서 먹을 거리를 사야 한다.
엄마의 밥상은 아침을 직접 만들어 배달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 다르다. 전주시의 판단은 이랬다. 쿠폰을 주면 아이들이 집 밖에 나가 끼니를 챙겨 먹으라 하면 잘 안 된다. 감수성 예민한 친구들이 다른 사람 시선을 신경 쓰느라 그렇고, 그냥 귀찮아 해 하는 경우도 많다.
이 영양사는 "아이들이 집에서 남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골고루 먹게 하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들 편지로 힘 내요"
하지만 식단 짜고 음식 만들고 배달하는 입장에서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영양사를 비롯해 직원들은 매일 오전 7시 전까지 식사를 가정에 전달해야 한다. 시간을 역으로 계산해 보면 새벽 1시까지는 출근해야 한다.
이 영양사도 처음엔 시청 공무원의 사업 참여 제안을 받고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엔 새벽 출근은 모든 일상이 무너질 게 뻔하기 때문에 망설여졌다"며 "솔직히 새벽 일을 감당하기 무섭기까지 했다"라고 말했다.
담당 공무원들이 여러 차례 찾아와 요청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영양사의 남편인 강철 전북외식산업 대표가 큰 역할을 했다. 강씨는 배 곯은 어릴적 경험을 떠올리며 "지금 세상에 밥 굶는 아이가 있어선 안 된다"며 이 영양사에게 동참을 권했다고 한다.
그렇게 처음 1년만 하기로 시작한 사업을 이어간 것이 7년째를 맞는다. 이 영양사는 그 이유를 묻자 "아이들과 정이 흠뻑 들어서"라고 했다.
회사 테이블에는 아이들이 '영양사 이모'를 향해 보낸 감사 편지들이 늘 가득 놓여 있다고 한다.
"지난 6년 동안 400통 넘는 손 편지를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었다는 편지, 특정한 음식이 먹고 싶다는 편지, 또 가족의 응원 편지까지. 정말 많은 편지를 받았고 그 편지가 제가 새벽일 할 수 있게 하는 큰 힘이 되었어요."
급식 대상을 넘어서 직접 만나 교류하는 아이들도 많다. "3월부터 급식을 시작한 초등학생 자매는 편지를 주고 받다 보니 정이 들었어요. 직접 만나 밥도 먹고, 놀기도 하고, 문구점 쇼핑도 했습니다. 영양사 이모와 가장 해 보고 싶은 게 뺑뺑 도는 놀이기구를 타고 싶다고 해서, 같이 타기도 했고요. 가족 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보게 된 쌍둥이 자매에게 '수능 특별 도시락'을 싸 주기도 했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가 직접 도시락을 싸 줄 형편이 안 된다며 연락을 주셨어요. 그래서 아침 식사와 별도로 직접 수능 도시락을 만들었어요. 아이들에게 마음 편히 시험을 볼 수 있었다는 손 편지를 받고, 정말 누군가를 위해 내가 도움이 되었다는 게 참으로 보람됐습니다."
"코로나19로 학교를 못 가니 한 끼니 못 때워 걱정"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은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미쳤다. 위생이 중요한 급식 사업체 입장에서도 부담이 없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영양사는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묻자 아이들 걱정부터 했다. 그가 맡은 '엄마의 밥상'은 코로나19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저소득 소외 계층, 그 중에서도 아동에게 밥을 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개학이 계속 미뤄지거나 중간중간 등교를 못하다 보니 학교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던 아이들이 한끼를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는 겁니다. 그 아이들의 영양 결핍과 결식이 걱정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실제로 아침에 밥만이라도 더 많이 담아 달라는 편지도 받았어요. 그래서 (아침) 한끼라도 정성껏 맛있게 해서 풍족히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영양사는 9월 인천의 초등학생 형제가 끼니를 챙겨 먹다 불이 났던 사건을 접하면서도 마음이 크게 아팠다고 했다. 이 사건은 취약 계층 아동들이 방임 상태에서 생활하다 불을 내 한 어린이가 세상을 떠난 사건이다.
"체력 허락할 때까지 할래요"
이런 사업의 '따뜻함'이 알려지면서 훈훈한 후원도 많다. 지역 사회에서 기부금 뿐 아니라 실제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식사 메뉴를 후원하는 사례도 있다. 2020년에도 전주시 딸기연구회가 딸기를, 전북 한우농가협회는 한우 고기를 아이들에게 직접 전했다.
이 영양사는 "아이들의 배고픔을 채워 주는 것을 넘어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전주시와 시민이 함께 하는 밥상"이라고 했다.
또 지자체가 시민들과 함께 저소득층·소외계층 결식 아동에게 도시락과 밑반찬을 지원해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약자우선, 사람 중심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노력이다.
이 영양사는 "내가 아이들을 위해 제일 잘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어 보람된다"며 2021년을 넘어 그 이후로도 "처음 결심할 때 그 마음이 변치 않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몸이 허락하는 한 급식 지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후의 계획도 있다. "이 일을 그만둘 때쯤 우리 아이들과 주고 받은 손편지들, 여러 사람들이 응원해 졌던 손편지들을 책으로 엮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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