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속담에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해가 뜨고 질 무렵엔 저 언덕 너머 보이는 존재가 친근한 개인지 무서운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데, 이때를 가리켜 프랑스 사람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이는 어둠과 밝음의 경계의 시간인 ‘불확실성’을 지칭하는 것이다.
지난 주말 일출을 보기 위해 강원 동해시 어달리해변을 찾았을 때, 나는 그 ‘개와 늑대의 시간’을 경험했다. 어두웠던 하늘은 파랗게 변해 일출이 다가왔음을 알렸지만 칠흑 같은 어둠에 싸인 바다는 파도와 암초들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다만 멀리서 반짝이는 등대만이 이곳이 바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시퍼렇던 하늘에 한줄기 불빛이 내리치며 바다의 모습이 일순 드러났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 떠오르는 시뻘건 태양과 거친 바다를 힘차게 지나는 고깃배들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드디어 불확실성의 시간이 가고 새로운 날이 온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해변 곳곳에는 코로나19로 백사장이 폐쇄됐다는 안내문과 차단선이 있었다. 매년 이맘때면 찾아오는 새해 해맞이 관광객들도 없어 한없이 을씨년스러웠다. 부디 올 한해는 누구나 평화롭게 일출을 볼 수 있는 ‘희망과 기쁨이 시간’이 찾아오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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