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모든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박일근 논설위원이 살아 숨쉬는 우리 경제의 산업 현장과 부동산 시장을 직접 찾아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서울 송파구에 아파트를 갖고 있는 A(55)씨는 2개월 전 전세 계약을 갱신하며 받은 보증금 1억5,000만원을 어떻게 굴릴지 고민하다 주식 계좌를 텄다. 삼성전자와 한국전력 등 망하지 않을 대형 우량주를 사 들인 A씨의 평가익은 이미 1,000만원을 넘었다. A씨는 "1억5,000만원을 은행에 넣어두면 한 달 이자가 20만원도 안 된다"며 "정부 규제로 부동산 투자는 더는 힘들다고 보고 주식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B(44)씨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미 뉴욕 증시를 확인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증시가 폭락한 지난해 봄 그는 마이너스통장에서 5,000만원을 뽑아 '동학개미운동'에 동참했다. B씨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급락한 주가가 V자 반등한 걸 기억한다"며 "이런 기회가 평생 다시 오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6개월 전부터 매달 100만원씩 적금을 붓듯 주식을 사 모으고 있는 회사원 C(35)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유튜브 주식 콘텐츠를 본다. 자신도 모르게 온종일 주가 등락을 확인하면서 일희일비하다 보면 보면 정신이 피폐해지지만 고수들의 조언을 들으며 탐욕과 공포를 경계한다. C씨는 "아무리 아껴 쓰고 영끌해도 집을 사는 건 거의 불가능한 세상 아니냐"며 "주식 투자밖엔 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말 서울 여의도 키움증권 본점 2층 영업부. 입구 키오스크 화면에서 '계좌개설/상속' 업무 단추 모양을 터치하자 대기표가 출력됐다. 대기인수는 7명. 창구마다 상담이 한창인 가운데 안쪽으로 들어가자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이 증권계좌개설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직원에게 최근 이런 어르신이 많이 오느냐고 물었더니 "스마트폰 이용이 불편하거나 힘들어하시는 분들만 오는 것"이라며 "대부분은 비대면 개설"이라고 답했다.
젊은층부터 노년층까지 너도나도 주식투자
증시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주식 투자 광풍이 불고 있다. 젊은층부터 중장년층은 물론 노년층까지 너도 나도 투자에 나서며 증시 주변 자금 유입도 빨라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키움증권에서 개설된 신규 계좌는 무려 50만개나 됐다. 하루 2만개 안팎의 새 계좌가 만들어졌다. 키움증권의 2020년 연간 신규계좌 개설 건수도 전년의 5배(333만건)에 달했다.
업계 전체로 보면 규모는 더 커진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 주식거래활동계좌수는 3,552만개를 기록했다. 주식투자 인구가 정확히 몇 명인지는 한국예탁결제원이 오는 3월 모든 상장법인의 주주명부를 확인해야 알 수 있다. 업계에선 통상 한 사람이 5개 정도의 주식 계좌를 갖고 있고 활동계좌수가 3,500만개를 넘은 만큼 주식 투자자(소유자)가 700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동학개미'로도 불리는 개인 투자자가 무려 700만 대군이 된 셈이다. 이 중 삼성전자 주주만 200만명 안팎인 것으로 추산된다.
경기 침체 막으려 푼 돈 자산 시장 유입
주식 인구 700만명 시대는 한국 증시가 가 보지 않은 길이다. 이런 동학개미 군단이 코스피 3,000 시대의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탄이 된 것은 유동성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시중 통화량을 나타내는 광의의 통화(M2)는 2020년 10월 기준 3,150조원이나 된다. 1년 만에 276조원 이상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를 막고 위기에 몰린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을 위해 푼 돈이 자산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에 맡겨 둔 대기 자금(주식예탁금)은 1년 새 27조원에서 65조원으로 증가했다. 풍부한 유동성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연합, 중국, 일본 등 주요 8개국이 코로나19 여파로 시중에 푼 유동성 규모는 14조달러(약 1경5,200조원)에 달한다.
물론 유동성만으로 대세 상승장이 될 순 없다. 신성호 전 IBK투자증권 대표는 "증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업 이익"이라며 "자기 회사 실적이 좋아진다는 걸 먼저 알게 된 직원이나 기업 관계자가 한발 앞서 주식 투자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업들은 깜짝 실적을 내 놓고 있다. 시총 상위 20개 기업 중 적어도 절반 이상이 사상 최대 매출을 올릴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는 증권사 실적 전망치를 바탕으로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할 상장사가 100곳도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실적 유동성 동학개미 3박자, 낙관론 우세
관심은 주가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다. 2021년 증시의 향배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만약 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100% 사기꾼'이다. 그걸 알면 굳이 남들에게 떠들 이유가 없다.
다시 동학개미와 유동성, 실적으로 돌아가면 답이 엿보인다. 이미 65조원의 실탄(고객예탁금)을 장전한 동학개미가 갑자기 증시를 떠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주가가 급락할 때마다 공격적인 저가 매수에 나서는 바람에 기다리던 조정이 나오지 않을 정도다. 코로나19가 잡히지 않는 한 2021년 당국이 유동성 흡수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외국인은 유동성에 힘을 보탤 가능성이 크다. 결국 관건은 기업 이익이 이미 높아진 시장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로 모인다.
일단 증권가에서는 낙관론이 우세하다. KB증권은 올해 코스피 상단을 3,300, 신한금융투자는 3,200으로 전망했다. 일각에선 코스피가 14년 만에 '박스피'를 탈피해 앞으론 3,000이 지지선이 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자산 운용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등 '머니무브'가 일어나고 있는 만큼 일반인도 더는 증시를 외면해선 안 된다는 조언도 잇따른다. 전 국민이 주식을 공부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얘기다.
지표상 증시 과열 우려도 적지 않아
그러나 자산 시장 거품에 대한 우려도 적잖다. 장밋빛 전망이 쏟아질 때가 꼭지일 수 있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2020년은 당초 코로나로 실적 기대치가 워낙 낮았는데 깜짝 실적이 나오며 주가가 오른 것"이라며 "그러나 2021년은 이익 증가율 기대치가 이미 40%(전년 동기 대비)에 달해 기업에서 이를 충족시키는 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젠 쉬어 갈 때라는 주장이다. 다만 하락 시 저가 분할 매수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달러화 약세로 신흥시장으로 투자금이 유입되며 우리 증시도 오르고 상품 가격과 비트코인까지 급등했다. 달러화가 다시 강해지면 반대의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한 외국계 증권사 CEO는 "달러화 약세를 미국이 지켜 보고만 있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코스피 시가총액이 2,000조원에 육박하며 사상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을 추월한 것도 부담이다. 증권가에서는 전통적으로 시가총액이 해당 기업이 한 해 벌어들인 이익의 몇 배인지 보여주는 주가수익비율(PER)로 거품을 판단한다. 그런데 기업이 투자자들에게 얼마나 큰 꿈과 희망을 제시하는지를 평가하는 '주가 대비 꿈 비율' PDR(Price to Dream Ratio)이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시가총액이 715조원까지 치솟고 PER도 1,300배를 넘으면서 사실 PDR 이외엔 주가를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지표가 없다. 그러나 PDR는 궤변이라는 비판도 적잖다. 거품이라면 꺼질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영끌, 빚투 개인투자자 하락장 대비해야
빚투의 한계도 보인다. 한국은행은 '2020 하반기 금융안전보고서'에서 개인의 주식 투자가 증가하며 청년층의 레버리지를 활용한 투자자금 수요가 빠르게 확대됐다고 밝혔다. 30대 이하 신용융자(증권회사에서 융자를 받아 주식을 매입하는 거래) 증가율은 무려 94.2%나 됐다. 주식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40대와 50대의 신용융자 잔고도 9개월 새 각각 6조원씩 늘었다. 사실상 모든 연령층이 빚을 내 주식 투자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신 전 대표는 "지금은 주가가 오르면서 투기 심리가 팽배하지만 상승이 멈추면 분위기가 급변할 것"이라며 "슈퍼사이클은 애널리스트들의 단골메뉴이고,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애널리스트는 없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종목별 양극화 장세가 펼쳐질 것이란 데엔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기업 실적과 유동성, 스마트 동학개미 등 3박자가 갖춰져 1분기까지는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5만원대였던 삼성전자가 이미 8만원대로 올라 선 상황에서 지금 들어가도 괜찮으냐는 질문엔 "강남 아파트가 12억~15억원일 때 모두 미쳤다고 했지만 지금은 24억~30억원"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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