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분광학과 광기술 분야를 연구하는 고재현 교수가 일상 생활의 다양한 현상과 과학계의 최신 발견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알기 쉽게 조망합니다
2020년은 수천만 명의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1918년 스페인 독감 이후 인류에게 가장 커다란 생채기를 남긴 해로 기억될 것이다.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최단 기간 내 백신이 완성됐으나, 백신의 보급과 접종 속도를 감안하면 인류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집단면역을 갖기까지 앞으로도 상당 기간이 걸릴 것이다. 결국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는 생활이 2021년에도 계속될 듯싶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감염자의 비말을 통해 전달되는 바이러스의 물리적 확산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중요한 방책이다. 이제 우리는 집 밖으로 나설 때면 항상 2m 정도의 거리두기를 의식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런데 2m라는 기준은 어떤 원칙에 의해 정해졌을까. 2m는 정말 나를 타인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절대적 안전 거리인가. 팬데믹의 시대에 과학자들의 연구 주제는 바이러스를 나를 수도 있는 비말이 형성되고 전파되는 과정, 이를 통해 감염 확산의 억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연구로도 확대되고 있다.
거리두기의 기원과 한계
흥미롭게도 2m의 거리두기라는 기준의 연원은 꽤 오래됐다. 1890년대 독일의 세균학자였던 카를 플뤼게가 환자의 호흡기를 통해 배출된 비말에 병원균이 있다는 걸 발견한 후, 감염자가 배출하는 분비물과의 접촉에 의한 질병의 확산이라는 개념이 정립됐다. 플뤼게는 환자를 중심으로 병균을 함유한 비말의 전파 거리를 측정해 1~2m 정도의 거리 두기를 제안한 바 있다.
1930년대 결핵을 연구했던 윌리엄 웰즈는 사람에게서 배출된 분비물을 이분법적으로 큰 비말과 작은 비말로 분류했다. 큰 비말의 경우 증발하기 전에 중력과 공기의 저항력으로 땅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이동 거리는 상대적으로 짧다. 1940년대 개선된 사진술을 활용해 큰 비말의 전파를 추적한 결과 환자를 중심으로 1~2m 정도의 거리 내에 집중적으로 분포해 있음을 밝혔고 이런 결과들이 거리두기 기준의 근거로 활용됐다.
작은 비말은 어떨까. 비말의 크기가 매우 작으면 액체가 쉽게 증발하면서 고형분 위주의 매우 작은 미립자(에어로졸)가 된다. 이들은 공기의 흐름을 타고 멀리 날아갈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부유하는 에어로졸 미립자들을 통해 전파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결론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의 기준에 대해 비판적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들이 출간되고 있다. 비판 근거 중 하나는 감염자가 기침 등을 통해 배출하는 비말을 웰스의 기준처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감염자가 배출하는 기체 덩어리는 따뜻하고 습도가 높은 난류성 흐름이라서 거기에 감싸인 침방울들은 증발이 억제된 상태로 7~8m 이동할 수 있음이 확인됐다. 비말의 최대 전파 거리가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긴 것이다.
2m란 거리두기의 기준이 문제가 되는 다른 상황은 실내처럼 환기시스템에 의해 공기의 흐름이 형성되는 곳이다. 기침 속 침방울과 에어로졸 입자가 실내의 공기 흐름을 타고 제한 없이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작년 8월 경기 파주시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발생한 집단 감염은 에어컨 앞에 앉았던 감염자의 비말이 에어컨의 공기 흐름을 타고 실내 전체에 퍼져 발생한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이로 인해 확진된 사람들은 최초 전파자의 주변뿐 아니라 2층 전체에 고르게 분포했다.
대화가 기침 못지않게 위험한 이유
비말을 급격히 퍼뜨리는 기침이나 재채기가 문제라면 조용히 나누는 대화는 어떨까. 사람이 재치기를 할 때 배출되는 기체의 최대 속도는 초속 10~30m에 달하고 대략 1만개의 침방울이 입과 코를 통해 방출된다고 한다. 대화를 나눌 때는 이 숫자가 수백 개 정도로 줄어 든다. 그래서 보통 대화가 기침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사람 사이의 대화가 재채기 못지않게 바이러스 전파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증상이 없는 무증상 감염자의 경우에는 대화가 바이러스 전파의 주 경로가 될 수 있다.
재채기와 대화가 다른 점은 대화는 항상 상대방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즉 비말의 상호 교차 가능성이 상존한다. 대만의 한 연구팀은 작년 11월 개최된 학회에서 2~20초 대화하는 사이 방출되는 침방울의 숫자가 한 번의 기침에서 배출되는 침방울의 숫자와 비슷하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들의 연구에 의하면 말하는 도중 뿜어내는 기체 덩어리는 2초 만에 1.3m 정도를 진행할 수 있다. 가벼운 기침과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과학자들은 침방울의 동역학을 어떤 방식으로 측정할까. 1초에 300~5,000장 정도 찍을 수 있는 고속 카메라가 핵심 역할을 한다. 우선 실험 장소의 공기 중에 미세한 액체 방울을 안개처럼 퍼뜨린 후에 레이저를 쏜다. 방울들이 레이저 빔을 산란시키면 이를 고속 카메라로 추적할 수 있다. 사람이 발음을 할 때 만드는 공기의 흐름이 액체 방울들을 움직이고 이를 고속 카메라로 촬영해 공기의 흐름을 분석한다.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켜면 전등의 빛을 산란시키는 먼지 입자들이 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사람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침방울도 마찬가지다. 레이저빔이 침방울에 부딪히며 강하게 산란되고 이를 고속 카메라로 촬영함으로써 침방울의 개수나 움직임을 분석할 수 있었다. 이런 연구는 결국 사람이 말을 할 때 어떤 방식으로 침방울이 형성돼 퍼져 나가는지에 대한 연구와도 연결된다.
비말의 형성을 억제하는 간단한 방법
성인이 하루에 만드는 침의 부피는 평균 1.5ℓ 정도다. 그런데 이 침이 대화하거나 기침할 때 침방울로 만들어져 배출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힐 점이 많다고 한다. 최근 프랑스와 미국의 공동 연구팀이 고속 카메라를 이용해 다양한 발음을 하는 사람들의 입을 촬영함으로써 침방울이 형성되는 과정을 시각화하고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가령 ‘Pa’와 같은 자음이 발음될 때를 보자. 이 경우 우선 두 입술을 붙이고 내부의 압력을 높여 발음 준비를 하는데, 이때 두 입술 사이에 침이 자리를 잡다가 입술이 열리면서 침의 막이 형성된다. 그후 입이 더 벌어지면서 침의 막이 얇아지다가 수직으로 배열된 여러 개의 (필라멘트라 부르는) 실 모양으로 갈라진 후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공기의 흐름에 의해 분리되어 날아간다.
이 과정에서 침이 가지는 독특한 성질이 중요하다. 물이 주성분인 침은 불과 0.5% 정도만 효소와 같은 다른 성분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침은 흔히 생각하듯 자유롭게 흘러가는 단순한 액체가 아니다. 침은 액체면서도 적당한 점성을 가지고 있고 때론 외부의 힘에 저항하며 자신의 형태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성질도 있다. 즉 입이 벌어질 때 입술 사이에 형성되는 침의 막이나 필라멘트는 적당히 늘어나고 변형되며 살아남아야 허파에서 올라오는 공기의 흐름을 타고 분리되어 침방울로 날아가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슈퍼 전파자의 경우 침방울 속에 포함된 바이러스가 침의 성질을 적당히 변조해 더 많은 침방울이 형성되도록 진화해 온 것은 아닌지 추측하기도 한다.
침방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상세한 이해는 비말을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힌트도 준다. 침방울의 형성 과정을 연구했던 국제 연구팀은 립밤이라 불리는 입술용 크림이 침방울의 형성을 4분의 1이나 줄인다는 결과도 함께 발표했다. 립밤은 물을 싫어하는 소수성 물질로서 코팅된 입술 위에 침의 막이 형성되는 경향을 줄여준다. 불가피하게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입술에 립밤을 칠하는 것이 침방울의 형성 및 전파를 줄이는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기침이나 대화를 통한 비말의 전파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고 그에 대한 완벽한 이해에 도달하려면 아직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다. 팬데믹의 시대에는 서로 간에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라! 그리고 상당히 먼 거리까지 부유해 돌아다닐 수 있는 비말의 흡입을 차단하기 위해 방역 마스크를 철저히 착용하라! 이는 당분간 코로나 바이러스의 종식과 일상으로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필수 원칙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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