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한국박사 1호' 에바, "인니 여성에 대한 편견 깨길"

입력
2021.01.07 04:30
16면
0 0

<36> 한국어 교육열

편집자주

인도네시아 정부 공인 첫 자카르타 특파원과 함께 하는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 통일)'의 생생한 현장.

에바 라티파 국립인도네시아대(UI) 한국어문화학과 교수가 UI 교정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데폭=고찬유 특파원

에바 라티파 국립인도네시아대(UI) 한국어문화학과 교수가 UI 교정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데폭=고찬유 특파원

금녀(禁女)의 벽은 높았다. 석사학위까지 받은 10년 공부를 서른 즈음 버렸다. 전혀 다른 분야, 늦깎이 도전, 7년간 타국살이 끝에 자국(自國) 최초가 됐다. 에바 라티파(45) 국립인도네시아대(UIㆍ우이) 한국어문화학과 교수는 '인도네시아인 한국문학박사 1호 및 한국어학과 전임교수 1호'다. 4대 학과장직을 작년 말 내려놓은 에바 교수를 자카르타 도심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데폭 우이 교정에서 만났다.

-한국어는 어떻게 공부하게 됐나.

"1995년 우이 아랍어학과에 입학했다. 아랍문자의 아름다움에 매료됐고 아랍국가에서 일하고 싶었다. 석사까지 줄곧 수석이었으나 차석인 남학생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뽑혀갔다. 아랍은 여성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모교에서 아랍어 강사를 했다. 2005년 어느 날 한국인 강사가 물었다. '한국어 관심 있어?'"

-그 한마디에 진로를 바꿨나.

"아랍어 서예가 취미여서인지 한글도 아름답더라. 드라마 '대장금' 덕에 한국 문화에 막 눈을 떴다. 새로운 꿈이 필요했다. 한글만 떼고 2005년 연세대에서 6개월 어학 연수를 했다. 2006년 귀국 몇 달 뒤 모교에 인도네시아 첫 한국어학과가 생겼다."

-쉽지 않았겠다.

"2006년 초등학생 아들만 데리고 한국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한국에 다시 갔다. 한국어 중급을 익힌 뒤 2007년 경희대 석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관련 지식이 없어서 한자, 한국사, 고전 등 학부 수업을 닥치는 대로 들었다. 경희대는 벚꽃이 유명하다는데 제대로 누린 적이 없다. '실력이 떨어진다'는 교수 말에 화장실에서 많이 울었다. 소설가 황순원과 인도네시아 작가를 다룬 '양국 전후 문학 비교'로 2012년 박사 학위를 받고 모교 교수로 부임했다."

-공부한 보람이 있나.

"2000년대 초반 이 땅에 한류가 들어왔을 때 10년 정도 갈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다른 나라보다 늦게 들어왔음에도 인도네시아 한류는 현재 세계 1위다. 저보다 한국어를 더 잘하는 학생들을 보면 뿌듯하다. 한국어 전망은 아주 밝다. 다만 2만여 대학 중 한국어학과는 4개뿐이라 아쉽다.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은데 교사가 없고 학교가 없다. 더 늘려야 한다."

에바 라티파 국립인도네시아대(UI) 한국어문화학과 교수와 학생들. UI 학생회 제공

에바 라티파 국립인도네시아대(UI) 한국어문화학과 교수와 학생들. UI 학생회 제공

-한국 생활은 어땠나.

"처음엔 실망했다. 드라마에서 본 다정한 나라가 아니었다. '더워 죽어, 여긴 알라 없으니까 그거(히잡) 벗어' 훈계하는 어르신이 많았다. 돼지고기를 못 먹는다고 했더니 연세대 식당에서 6개월 내내 달걀만 줬다. 서양인과 동남아인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랐다. 무슬림과 인도네시아에 대한 편견이 심했다."

-예컨대 어떤 편견인가.

"특히 무슬림 여성에 대한 편견이 그렇다. 여성은 교육을 못 받는다거나 남성은 부인을 4명 둔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여성은 독립적이고 경쟁력이 높다. 유학 시절 제가 기혼인 걸 알고 깜짝 놀란 한국 여성이 있다. 저처럼 해외 유학을 가고 싶어했으나 결혼 뒤 남편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은 인도네시아를 잘 모른다. 양국 여성들에 대해 공동 연구를 했으면 좋겠다."

-그걸로 가능할까.

"스승이 권하는 술을 끝내 거부한 적이 있다. 외국인 제자들을 동료 교수들에게 자랑하는 자리였는데 일그러진 스승의 낯빛을 잊을 수 없다. 몇 년 뒤 박사학위 수여식 때 스승이 한 말은 더 잊을 수 없다."

에바 라티파 교수가 국립인도네시아대(UI) 교정에 있는 네덜란드 작가 에두아르트 다우어스 데커르의 동상 앞에 섰다. 데커르는 식민지배의 잔혹상을 고발한 '막스 하벨라르'를 썼다. 데폭=고찬유 특파원

에바 라티파 교수가 국립인도네시아대(UI) 교정에 있는 네덜란드 작가 에두아르트 다우어스 데커르의 동상 앞에 섰다. 데커르는 식민지배의 잔혹상을 고발한 '막스 하벨라르'를 썼다. 데폭=고찬유 특파원

어쩌면 실마리가 되어줄 스승의 말은 이렇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서로 이해하면 문제 없다. 너 덕분에 그 믿음을 존중하게 됐다. 그 믿음이 아름답다."

데폭=글ㆍ사진 고찬유 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