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 '한국인의 밥상' 10년 터줏대감 최불암
배우 최불암(81)은 깻잎장아찌를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 2012년 가을, KBS1 '한국인의 밥상' 촬영 차 미국 뉴욕으로 갔을 때 최불암은 파란 눈의 미국인 부부가 내준 깻잎장아찌 밥상을 받았다. 부부가 직접 텃밭에서 기른 깻잎으로 만든 한국 음식이었다.
부부는 "한국 음식은 건강식"이라며 "인터넷에서 요리법을 배워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5일 본보와 서면으로 만난 최불암은 "그 외국인 부부가 만들어 준 깻잎장아찌가 어찌나 맛있던지 정말 울면서 먹었다"고 지난 기억을 꺼냈다. 그는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의 위대함을 발견한 순간이었으니까요."
"역경 속 밥상엔 우리 어머니들 지혜 담겨"
'한국인의 밥상'이 7일 방송 10년을 맞는다. 최불암은 2011년 1월 6일 거제 겨울 대구 편을 시작으로 흙과 바다 내음 따라 1,400여 곳을 옮겨가며 35만㎞를 이동했다. 무려 지구 9바퀴 거리다.
백발의 '국민 배우'는 힘에 부친 여정을 사명감으로 버텼다. 최불암에게 밥상은 "역사를 내놓는" 일이다. 선조들이 일제 강점기 등을 견디며 지켜낸 밥상엔 1,000년이 넘는 우리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건해(1894~1963)지사는 중국에서 밥을 지어 임시정부 요인들의 독립운동을 도왔고, '한국인의 밥상'에선 오 지사가 중국풍으로 짠지의 물기를 빼 기름에 볶아 만든 짠지 볶음 등을 소개했다.
역사의 풍파로 가난했던 밥상엔 어머니의 지혜가 녹아 있었다. 최불암은 "여러 곳을 다니면서 받은 밥상 대부분이 어려운 시절에 가족을 먹이기 위해 어머니가 궁핍한 식자재를 갖고 지혜를 짜내 만든 것들이었다"며 "그런 어머니들에 대해 애잔한 마음도 들고, 그 바탕에 깔린 역사에 대해 어른으로서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껴" 이 방송을 10년 동안 지켰다고 했다.
최불암에게 '한국인의 밥상' 10년은 한국인의 뿌리와 정서를 찾는 순례길이었다. 멕시코와 브라질 등에서 만난 이민족 후손의 밥상엔 늘 김치가 있었다. 최불암은 "배추 대신 수박껍질과 양배추로 만든 김치였다"며 "김치는 한국인의 DNA라는 생각이 들었고, 눈물겨웠다"고 했다. 최불암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도 무짠지다. 일곱 살 때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난한 살림살이로 즐겨 먹었다고 한다.
"'전원일기' 보고 귀농해 이장된 40대 만나"
'한국인의 밥상' 제작을 총괄하는 정기윤 PD에 따르면 최불암은 밥상과 역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지금도 공부한다. 2013년 멕시코로 향하는 비행기 안, 노배우의 손엔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이 들려 있었다. 20세기 초 멕시코로 떠난 이민 1세대(에네켄)의 한맺힌 삶을 담은 소설로, 당시 최불암은 에네켄 후손들의 밥상을 소개하러 가는 길이었다.
최불암은 '한국인의 밥상' 촬영을 떠나면 여행작가가 된다. '눈발인지 안개인지 날씨가 낭만적이다 '안나 카레리나'에서 구태를 벗어나려는 안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가 촬영 때마다 들고 다니는 수첩엔 서정에 젖은 여행 단상이 빼곡하다.
최불암은 그간 8,000여개의 음식을 맛봤다. 충청도의 우럭젓국은 그가 특히 좋아했던 음식이다. 밥상을 마주하다 보면 새로운 인연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최불암은 "남원에 추어탕으로 촬영하러 갔을 때 한 어르신이 동네 느티나무 아래에서 날 기다리다 내 손을 잡고 신문지에 정성스럽게 산초를 싸서 주더라"며 "기억에 남는 건 음식보다 사람들"이라고 했다.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에서 22년 동안 구수하고 따뜻한 아버지로 살아온 터라 최불암을 맞는 지역 주민들의 손길은 더 따뜻하다. "상주에서 40대 이장을 만났는데, 대학생 때 '전원일기' 김회장 보고 마을 이장을 꿈꾸다 귀농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 고향, 황해도 해주 가봤으면"
최불암은 내주 그의 오랜 지기인 김훈 작가와 전주로 떠난다. '한국인의 밥상' 새해 첫 여정이다. 지난 연말엔 '한국인의 밥상'을 즐겨보는 김혜수와 밥 한 끼(14·21일 방송)를 함께 했다. 최불암은 "(김)혜수가 데뷔할 때부터 드라마를 같이 한 우리 집사람(배우 김민자)을 친엄마처럼 따랐다"고 촬영에 함께 한 계기를 들려줬다.
팔순을 지난 배우에겐 작은 소망이 있다. 아버지의 고향인 황해도 해주로 '한국인의 밥상'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북한 음식을 못 다룬 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죠. 갈 수 있다면 황해도 해주에 가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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