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검찰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지난해 7월 사망한 박원순 전 시장의 생전 마지막 날 행적이 추가로 공개됐다.
박 전 시장은 사망 전날인 7월 8일 서울시 젠더특보를 통해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다음날 오전 비서실장과의 독대에서 시장직 사퇴를 고려한다는 말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날 오후 젠더특보에게 "이 파고는 넘기 힘들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이어 비서실장과 통화에서 "이 모든 걸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사망 직전 행적을 보면 박 전 시장은 '불미스러운 일'이 닥쳐올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지했다. 그러나 그가 그 사실을 알고 나서 했던 말과 행동을 보면, 피해자에 대해 미안함을 표시하거나 사과를 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낸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
생애 마지막 날 박 시장에겐 피해자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박 시장 자신의 미래와 주변 사람들 걱정만 머릿 속에 가득했던 것으로 보인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면목이 없다. 얼마나 모두 도왔는데"라며 지지자와 측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시했을 뿐, 자신에게 세 차례에 걸쳐 각각 수백만 표를 몰아 준 서울 시민에게도 아무 말을 남기지 않았다. 그에게 이 고소 사건은 본인의 불찰로 인해 불거진 일이었다기보다는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으로서 넘어야 할 '높은 파고'에 지나지 않았던 셈이다.
변호사 시절 성폭력 사건에서 큰 이정표를 세웠고, 성공한 시민운동가였으며, 최초의 민선 3선 서울시장이었던 박 전 시장의 죽음은 물론 안타깝고 비극적인 일이다. 그러나 자신과 자신의 지지자만을 생각한 그의 마지막 모습, 그의 최후 행적에서 드러난 성인지 감수성의 부재에는 큰 실망감을 감추기 어렵다.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고 지지층만 염두에 두는 이런 인식이 권력형 성범죄 사건에서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라는 점도 지적할 부분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대법원 확정 판결 후에도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폭력 사건 피해자 역시 "직접적인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피해자 입장에서 보자면 아무리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되고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온다 하더라도, 가해자의 사과와 반성이 없으면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범죄의 공소 시효는 있을지언정, 피해자가 입은 상처에는 시효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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