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망 한달 전에도 학대 증거 확인
홀트는 "법적 권한 없어 강제 조사 못했다"
신현영 "국가적 사후관리 시스템 갖춰져야"
정인이 입양을 담당했던 홀트아동복지회(홀트)가 정인이가 숨지기 한 달 전 양부모로부터 직접 명확한 학대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홀트는 입양기관으로서 사후관리 책임이 있었지만, 민간기관이기 때문에 강제 조사할 권한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6일 한국일보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홀트는 지난해 9월 18일 정인이 양부모와의 전화통화에서 "아무리 불쌍하게 생각하려고 해도 불쌍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 화를 내며 음식을 씹으라고 소리쳐도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정인이는 당시 15개월로, 화를 내면서 야단을 쳐도 부모 뜻을 이해하고 분간하긴 어려운 시기였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은 "부모가 아이에게 야단 치는 게 훈육이라기보단, 훈육을 가장한 화풀이인 경우가 대다수"라며 "그것도 15개월 아기에게 옳고 그른 걸 구분하지 못한다고 야단 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홀트는 양부모가 정인이에게 화를 내고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는 걸 파악하고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민간기관이기 때문에 강제로 조사하거나 아이를 양부모로부터 분리시킬 방법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홀트는 6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당시 양모와의 전화상담을 통해 아동 상태를 듣고, 즉시 소아과 진료를 요청했고 '입 안 염증도 없고, 건강상 문제는 없다'는 답변을 전달 받았다"고 밝혔다. 가정방문을 하지 못한 것을 두고는 "양모가 가정방문을 거절했고, 입양기관은 가정방문을 강제로 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다"고 해명했다.
홀트는 지난해 9월 23일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이 정인이의 체중이 1㎏ 감량돼 3차 아동학대 조사에 착수한 사실도 닷새가 지나서야 알았다. 홀트는 이때도 양부모가 가정방문 요청을 거부하자 10월 15일로 방문 약속을 미뤘다. 그 사이 정인이는 16개월 밖에 살지 못한 채 10월 13일 생을 마감했다.
홀트가 입양 아동에 대한 사후관리에 소홀했던 정황이 밝혀진 건 처음이 아니다. 신현영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입수한 '서울시 양천구 입양아동 사망사건' 자료에 따르면 홀트는 지난해 5월 26일 두 번째 가정 방문을 통해 피해 아동의 신체에서 상흔을 발견하기도 했다. 당시 방문은 정인이에 대한 학대의심 신고가 있어, 이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홀트는 이때 "(양부모가) 아동의 배, 허벅지 안쪽 등에 생긴 멍자국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별다른 후속조치 없이 아동양육에 보다 민감하게 대처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데 그쳤다.
홀트는 지난해 3월 23일 1차 방문에서도 "부부와 아동(정인이) 및 친생자녀는 건강하고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양모의 학대는 이미 3월에 시작됐다. 홀트의 잘못된 판단으로 조기에 정인이를 학대에서 구할 수 있었던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다.
6월에도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통해 피해 아동이 2주간 깁스를 했고, 양모가 정인이를 자동차에 30분 방치한 사실을 인지했지만 이어진 통화와 가정 방문 때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었다. 홀트는 이에 "양모에게 아동의 안전을 위해 가정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16개월 아이에게 '먹어라' '씹어라'라고 강요하고, 아이가 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타인에게 호소하는 상황도 일반적이지 않다"며 "홀트가 이 이야기를 듣고 부모가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하고 미숙하다는 인지를 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신 의원은 "정부에서 입양기관이 사후관리를 제대로 하는지, 적절히 이행하지 못했을 때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에 대해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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