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피해자 측은 판결이 확정되는 대로 일본 정부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 절차에 돌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매각 가능한 일본 정부 자산을 찾는 게 쉽지 않은데다, 소송서류 송달 등 매각 절차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실제 집행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 김정곤)는 8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하면서, 피해자 1명당 1억원씩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일본 정부가 주권면제론(한 국가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상 원칙)을 내세워 항소하지 않을 뜻을 내비치면서, 1심 선고는 이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 정부는 무대응 전략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돼 배상과 관련해 먼저 움직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본 정부의 배상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돈을 받아낼 방법은 강제동원 피해자 사건과 마찬가지로 강제집행 절차를 밟는 것밖에 없다. 이럴 경우 국내에 있는 일본 정부 자산을 찾는 게 우선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김강원 변호사도 이날 선고 직후 "강제집행이 가능한 (일본의) 재산이 있는지는 별도로 검토해야 할 사항이어서 즉답은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의 민간기업 재산을 압류하는 것과 일본 정부 재산을 대한민국 법원에서 강제집행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일제 피해자 문제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국내에 일본 대사관과 총영사관 등이 있지만 국제법상 강제집행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선 "공관 지역은 불가침"이라고 밝히면서, 부지 및 각종 비품 등은 강제집행으로부터 면제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설사 대사관 등을 제외한 일본 정부의 매각 가능한 자산을 찾아 강제집행 절차에 들어간다고 해도, 강제동원 피해자 사건 소송과정에 비춰보면 오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매각을 통한 현금화는 법원의 압류명령과 매각명령을 통해 가능한데, 이 과정에서 압류명령 결정본 등 각종 소송서류 송달 문제로만 1년 이상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의 국내 자산매각 절차를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법원이 강제동원 피해자 측의 자산 압류 신청을 받아들인 것은 2019년 1월이었지만, 같은 해 7월 일본 외무성이 해외송달 요청서를 반송하면서 이듬해 6월에야 공시송달 결정이 내려졌고, 결국 2020년 8월에 압류명령 결정의 효력이 인정됐다. 이처럼 일본이 재차 송달 거부나 즉시항고·재항고 등의 법적 지연 절차를 밟을 경우 배상금 집행을 위한 현금화 작업은 늦춰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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