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심사단계’라고 언급... 건조 단계 진행 안 돼
전문가 "상세설계부터 건조까지 3~4년 걸릴 듯"
북한이 다시 ‘핵’을 들고 나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9일 공개된 8차 당대회 사업 총화(결산) 보고에서 “핵 기술을 고도화하고 핵무력 건설을 중단 없이 강행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핵추진 잠수함과 수중발사 핵 전략무기를 보유하겠다고도 했다. 건조한다는 설만 제기됐던 핵 잠수함 개발이 김 위원장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공식화된 것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국가방위력’이라는 표현으로 ‘핵’ 언급을 자제했던 북한은 9일 공개된 보고에서 작심한 듯 핵이라는 표현을 36번이나 썼다. ‘핵무력’이란 단어는 11번 등장했다. 기존의 핵 전력에 만족하지 않고 핵 능력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노동당 규약을 개정해 ‘국방력 강화’를 명시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입에서 처음 나온 핵잠… 실제 건조 능력은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김 위원장의 ‘핵잠수함 개발 선언’이었다. 노동신문은 “김정은 동지께서 핵전쟁 억제력과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위한 투쟁에서 이룩한 성과를 언급했다”며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연구가 끝나 최종 심사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핵 전략무기를 보유할 데 대한 과업이 상정됐다”고 했다.
여기서 언급된 핵 잠수함은 디젤 방식이 아닌 원자력 기반 엔진으로 움직이는 ‘핵 추진 잠수함’이다. 하루에도 1, 2회 물 밖으로 나와 연료를 공급 받아야 하는 기존의 디젤 잠수함과 달리 무제한 수중 작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사전 탐지되지 않고 미 본토 코 앞까지 은밀히 접근해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현재 보유했거나 건조 중인 2,000톤급 신포급(고래급), 3,000톤급 로미오급 개량형, 4,000톤급 신형 잠수함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 미 본토에서 2,000~3,000㎞ 떨어진 지점에서도 발사가 가능하지만 디젤 기반이라 사전에 노출될 위험이 있었다. 북한이 이날 “수중 발사 핵전략무기도 보유하겠다”고 언급한 점을 감안하면, 추진 동력은 물론 무장까지도 모두 핵으로 이뤄진 전략핵잠수함(SSBN)일 가능성이 크다.
관건은 북한이 실제로 핵잠수함 건조 기술을 보유했느냐다. 북한이 ‘최종 심사단계’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실제 건조 단계까지 진행이 안됐다는 의미다. 건조를 하려면 ‘소형 원자로’ 제작 기술이 필수다. 해군 예비역 대령이자 잠수함 전문가인 문근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외래교수는 “북한은 1970년대 중반부터 영변 원자로를 확보했다. 원자로 원리는 동일하기 때문에 소형 원자로 개발도 북한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라며 “2010년에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소형 원자로 제작 기술을 습득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북한이 기본설계까지 한 것으로 보이는데 상세설계와 함 건조까지는 3~4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잠 건조가 불가능한 미션이 아니라는 뜻이다.
핵무기 언급한 北의 의도는… 美 압박? 내부 결속?
북한은 이날 핵잠수함 외에도 미국을 겨냥한 전략무기를 과시했다. 2017년 최대 사거리 1만3,000㎞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호 발사가 성공한 사실을 자찬하며 앞으로는 명중률을 1만5,000㎞까지 늘리라고 지시했다. 1만5,000㎞는 북한에서 미 전역을 사정권에 넣을 수 있는 사거리다.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나 패트리엇 등 기존 미사일로 요격이 어려운 극초음속(최소 마하 5ㆍ시속 6,120㎞) 무기 개발 사실도 공개했다.
이를 놓고 오는 20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강공 카드를 던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이 북한을 향한 적대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도발할 수 있다는 ‘기선제압용’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이날 미국을 향해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조선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며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방력 강화의 이유를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서 찾은 것이다. 이날 언급은 미 대선 이후 북한이 내놓은 첫 대미 메시지이기도 하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은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이는 결국 바이든 정부에도 기존 북한의 입장을 강하게 요구하며 반응을 떠보려는 취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수해로 인민들에게 마땅히 내세울 경제 성과가 없는 북한이 ‘국방력 강화’를 일부러 과시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당 대회는 인민들에게 지난 기간 계획한 것의 성과를 평가 받고 다음 목표를 제시하는 내부행사”라며 “핵과 군사력 강화를 언급한 것은 인민들을 안보 차원에서 안심시키고 경제발전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정적 환경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내적 메시지로도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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