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사당 난입 사태 어떻게 봐야 하나]
"미국의 다인종 민주주의는 여전히 미숙"
김현욱 교수 "기득권 빼앗긴 백인 선동"
우정엽 센터장 "美시민이 일 벌여 놀라"
빠른 수습은 저력… "제도 복원 기회로"
“미국이 민주주의의 등대라는 신화는 깨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의 워싱턴 연방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를 목격한 뒤 선이(沈逸) 중국 푸단대 교수가 내놓은 논평이다. 미국이 자랑해 온 정치 제도 우월성이 허구라는 게 드러난 만큼 이제 정신 차리라고 일침을 가한 것이다.
실제 환멸의 시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연설문 작가 출신인 데이비드 리트는 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번 사태를 지극히 미국적인 사건으로 규정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과 미국인의 선민(選民)의식이 이번 일의 본질적인 요인이다. 사실 4년여 전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 면모가 강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할 수 있었던 건 민주당 정치 엘리트들을 향한 토박이 백인들의 반감을 적절히 활용한 덕이었다. 그러나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그의 태도야말로 자가당착에 정치적 엘리트주의라는 게 리트의 일갈이다. 리트가 보기에 시위대는 일부 미국인이, 즉 자신들이 다른 미국인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겼고, 때문에 차기 대통령을 뽑을 권리도 자신들에게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정말 ‘트럼프 미국’은 그들의 것이었다.
폭력 면에서도 이번 사태는 상징적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향후 당분간 트럼프 시대 난맥상을 함축한 사건으로 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주의 정치 제도가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에 의해 훼손되고 협박당했다는 것이다. 같은 날 일간 뉴욕타임스(NYT)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탓에 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진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타락과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을 시위대가 의사당 난입으로 실천했다”며 “국가 권력의 평화적 이양을 방해한 이번 사태는 전 세계 민주주의에 가해진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어쩌면 냄비가 가열된 건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부터다. 물은 끓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통령 트럼프’ 자체가 양극화한 사회의 반영이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10일 본보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는 기득권을 빼앗겼다고 여기는, 억울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자기보다 잘나가는 이민자들을 보며 아니꼬웠던 백인들이 주로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에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단단해 보이는 건 일종의 착시라는 지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생존을 위해 자기를 떠받드는 사람들만 챙기며 분열을 부추겼고, 미국 사회 구조는 이를 버텨 내기에 취약했다. 6일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200년이 넘은 선거인단 투표 제도 등을 보고 미국 민주주의가 상당히 성숙한 줄로들 알지만 실제 변화상이 반영된 다인종 민주주의는 여전히 미숙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미국 민주주의의 토대까지 흔들 정도는 아니고, 그런 만큼 침소봉대할 필요는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충격적인 건 사실이다. 세계가 경악했다. 다만 본질을 결정하는 게 가시적인 인상은 아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이번 사태로 미국 체제가 독재로 바뀐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제도가 공격 당했다는 사실보다 그런 일을 벌인 게 미국 시민이라는 사실이 놀라웠을 것”이라며 “트럼프라는 극단적 인물이 극단적 지지자들을 선동해 벌어진 일탈이자 상존하는 갈등이 과도하게 표출된 결과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실질적이기보다 말 그대로 상징적인 사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유사 쿠데타’는 좌절됐다. 해프닝으로 끝났다. CNN방송은 “이번 사태가 참혹하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나라가 전복되기도 했다”며 “이번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건 미국의 민주주의가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저력이 있었기 때문에 신속히 수습됐다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 뉴저지주 하원의원인 톰 맬리노우스키는 8일 로이터통신에 “세계에 대한 미국의 메시지는 우리가 완벽하다는 게 아니라 불완전에 따른 것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미국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놓인 건 사실이다. 10일 영국 BBC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뒤 지금껏 미국은 세계 민주주의 선진국 가운데 가장 정치적 기능 장애가 심하고 분열된 사회였다”며 “민주주의를 복구해 미국을 좀더 평등하고 덜 열렬한 사회로 만드는 게 ‘미국 브랜드’를 재건하는 데에 필수적인 일”이라고 조언했다.
위기는 기회다. 환부가 노출된 만큼 전화위복을 노리라는 제언이 나온다. 첫 단계는 트럼프 대통령 탄핵이다. 로이터는 “트럼프 세력을 일벌백계하지 않으면 나라 밖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옹호하는 미국의 역할이 위축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시사잡지 애틀랜틱은 요니 아펠바움 자사 선임편집자 칼럼을 통해 “탄핵은 대통령을 문책하는 헌법상 제도이자 폭도의 폭력에 맞서는 법치 원칙상 최고의 방책”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양극화 사회를 바꾸는 게 민주주의를 살리는 길이다. CNN은 “트럼프 탄핵을 넘어 조 바이든 차기 행정부는, 정치인이 자신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사회ㆍ경제적으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미국민의 인식을 깨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인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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