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사 억류’ 혐의 징역 살던 자파로프
前 대통령 하야 따른 조기 대선서 압승
중앙아시아에 하나뿐인 민주주의 국가 키르기스스탄이 친(親)러시아 우파 대중영합주의자(포퓰리스트)에게 권력을 몰아줬다.
10일(현지시간)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이날 치러진 키르기스스탄 대선 제1차 투표에서 사디르 자파로프(52)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득표율 79.23%를 기록해 사실상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키르기스스탄 선거법상 1차 투표에서 한 후보가 과반을 득표하면 결선 투표 없이 당선이 확정된다.
이날 선거는 ‘조기 대선’이었다. 지난해 10월 총선 당시 여권에 의한 광범위한 표 매수 의혹이 불거지자 화가 난 시위대가 의회와 대통령 사무실이 있는 정부 건물을 점령했고, 이에 따른 정치적 혼란의 책임을 지고 소론바이 젠베코프 대통령이 하야했다.
자파로프는 포퓰리즘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대통령 권한대행 재임 당시 정치인들에게 부정하게 취득한 재산을 30일 이내에 국고로 반환하라고 명령하는 등 부정부패 척결 의지를 드러내며 인기를 끌었다. 키르기스스탄 최대 범죄조직 두목을 체포하기도 했다.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며 농촌 유권자를 핵심 지지 기반으로 삼는 민족주의자이지만, 러시아는 “전략적 동반자”로 부른다. “옛 소련 시절 70년 동안 함께 살았다”면서다. 대선 운동 기간 동안에도 러시아와 긴밀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양국은 가깝다.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 인근에 러시아 공군 기지가 있고, 키르기스스탄 출신 이주 노동자 수십만명의 행선지가 러시아다.
문제는 그의 범죄 전력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유죄 판결을 받은 납치범이 선거에서 압승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지난해 9월까지 그는 복역 중인 죄수였다. 2005년 ‘튤립 혁명’ 직후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대통령 지지자로 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 바키예프 대통령 보좌관까지 지낸 그는 2013년 고향인 이시쿨주 주지사 억류 사건에 연루돼 해외에서 도피하다 2017년 귀국 시도 때 체포됐고, 11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야권의 시위 과정에서 풀려난 뒤 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으며 정치적으로 완전히 재기했다.
의혹의 시선은 여전하다. 현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집계한 투표율은 39%에 불과하다. NYT는 “조직 범죄와 연결된 부패한 민족주의자라는 게 그를 향해 제기되는 일각의 비난”이라며 “투표 부정 보고들이 산재해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오히려 권력은 그에게 집중되는 분위기다. 이날 대선 투표와 함께 국가 통치 체제 결정을 위한 국민투표도 실시됐는데, 유권자의 80% 이상이 대통령제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키르기스스탄은 2010년부터 총리와 대통령에게 통치 권한을 분산하는 이원집정부제를 유지해 왔다.
자파로프가 강조하는 건 정치적 안정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도처에 위기”라며 “반대자들에게 단결할 것을 요구한다. 소수는 다수에게 굴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NYT는 “자파로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길을 따르려 하는 듯 보이는데 그 길은 위험하다”며 “2005~2010년 임기 중 손에 쥔 모든 권력 수단들을 강화하려 시도하다 유혈 시위에 의해 물러난 바키예프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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