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의 퇴직자들 '사람장사'로 쉽게 한몫 챙겨
<4>떼인 돈이 흘러들어가는 곳
현대제철의 도급업체 H사의 대표는 한달 약 1억원의 수익을 올린다. 한해 12억원 가량이다. H사에 따르면 해당업체 사장은 도급계약을 맺을 당시 현대제철에서 근무했던 고위 경영자(현재 퇴직)의 지인이다. 현대제철측에서는 이런 관계를 묻는 질문에 "모른다"고 했다.
H사에서 월급 300만원 정도를 받고 일하는 하상원(가명ㆍ37)씨. 업계 통상 도급비에서 관리비를 뗀 순수 인건비 지급률은 72~73% 정도인데, 그보다 월 30만원을 덜 받는다. 이로 인해 업체는 월 6,000만원 이익이다. 하씨는 "업계 관례상 도급비의 약 90%(인건비ㆍ관리비 등)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고스란히 사장의 수익으로 잡힌다"며 "업체 사장들은 별다른 노동활동 없이 매달 1억원의 이윤을 남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H사는 이에 대해 "이윤 중에 운영비 등으로 쓰이는 금액이 많아 사장이 공식적으로 가져가는 돈은 월 1,000만원 정도"라고 밝혔으나, 정확한 운영비 사용 내역은 밝히지 않았다.
어떤 업체의 사장이 억대 연봉, 혹은 수십억원의 수익을 챙긴다고 해도 그 자체가 특이하거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업체가 물건이나 서비스를 파는게 아니라, 노동력을 파는 '사람 장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장의 연봉은 노동자의 피·땀·눈물을 가로챈 중간착취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업체 대표들 상당수는 원청과 연관이 있는 낙하산인 경우가 많다.
'사람 장사'로 한몫 챙기는 원청의 낙하산들
한국일보가 인터뷰한 100명의 간접고용 노동자 중 24명이 "원청의 퇴직자 또는 원청 오너 일가의 친인척이 소속업체 대표나 대주주”라고 답했다. 소속업체가 겹치는 중복응답을 제외해도 이런 ‘낙하산 대표’는 15명에 달했다. 이런 내막을 노동자가 모르는 경우도 많아 실제로는 그 비율이 훨씬 높을 것으로 보인다.
낙하산 대표가 있는 15개 업체 노동자와 노조에게 문의한 결과, 사장의 연봉이나 수익을 알고 있는 곳은 5군데였다. 그리고 그 5개 업체 대표는 최소 1억원 안팎의 연봉, 한해 10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겨우 170만원~300만원을 받는 업체들이다.
우선 노동자에게 월급 171만원~175만원(세전)을 지급하는 코레일네트웍스의 사장은 코레일 퇴직자 출신으로 2019년 1억2000여만원, 지난해 9,190여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코레일네트웍스측은 “사장 연봉의 경우 당해 예산 쓰임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다"고 해명했다. 자세한 내역을 묻자 이후 취재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또 노동자들에게 월 190만원을 주는 서울도시가스 검침업무 위탁사 S업체 대표는 예스코(도시가스 공급 및 가스기기 판매업체) 출신으로 연봉은 8,000만~9,000만원 정도로 알려졌다. S사 한모 대표는 "원청으로부터 월 8,000여만원의 지급수수료를 받는데, 이 중 80%는 직원들 인건비로 나간다. 남은 20%에 보수비, 운영비, 내 급여 등이 포함돼 있다. 정확한 연봉은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주유소 직원에게 초과수당도 주지 않은 현대오일뱅크 직영(위탁)주유소장은 현대오일뱅크 퇴직자로서 수익은 연 1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이 주유소장은 "정확한 금액은 밝힐 수 없고 월 1000만, 700만원 가져간다고 해도 (세금 등) 이것저것 떼면 얼마 안남는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가 월 169만원을 받았던 LG트윈타워의 청소용역업체 지수아이앤씨의 대주주인 LG그룹 대주주 특수관계인 2명이 2019년 배당금으로 60억원을 수령했던 것은 이미 유명하다. 지수아이앤씨에 대표이사 연봉 등을 문의했으나 “내부경영과 관련한 사항은 외부에 제공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노조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계약을 맺은 방사선관리 용업업체 9곳 중 1곳도 한수원 전신인 한국전력(한수원으로 분사하기 전) 퇴직자가 운영한다.
이런 방사선관리 용역업체들의 경우 막대한 이익을 남긴다. 노동자에게 월 300만원 정도를 지급하고 무려 한달 700만원을 관리비 명목 등으로 떼어가는 한수원 용역업체 S사의 사례를 보면, 수익이 막대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업체는 한수원 퇴직자가 운영하는 업체는 아니다. 박상희 민주노총 원전방사선안전관리 지회장은 “S사는 한수원으로부터 한해 약 80억원의 돈을 받는데, 인건비와 관리비 지출 금액을 다 합쳐도 총 60억원 정도에 그친다”며 “남은 20억원이 모두 대표에게 돌아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S사에 문의했지만, 해당 업체는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런 행태에 대해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근무 중인 도급업체 소속 이모(42)씨는 "이걸로 돈 남겨 먹는 건, 연줄만 있으면 땅집고 헤엄치기"라고 했다. 제철사 하청 노동자 이모(37)씨도 “현 업체 사장은 원청 고위임원 출신이고, 직전 업체 대표는 원청 오너 일가의 친척으로 알고 있다”며 “원청이 챙겨줘야 할 사람들이 많다 보니 짧게는 2년, 길게는 8년마다 하청업체 사장이 바뀌고, 업체 사장은 이 기간에 최대의 이익을 취하려 한다"고 말했다.
허위 노동자 만들어 임금 빼돌려, 현장에서는 노동강도 가중
아예 사장 가족의 이름을 현장 노동자로 올려놓고 돈만 챙기기도 한다. 충북 청주시의 한 폐기물수거업체에서 일하는 윤모(54)씨는 “업체 사장은 원청으로부터 12명분의 노무비를 받아 놓고, 실제로는 11명의 직원만 채용했다”며 “다른 1명은 사장 아들의 이름을 올려놓고 실제로는 사무직 일을 맡겼다”고 설명했다. 업체 대표 일가는 현장 근로자 1명분만큼의 임금을 추가이윤으로 남기고, 수거인들의 업무강도는 올라가는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한 하청업체는 지난해 정원 23명을 기준으로 도급계약을 맺었지만, 정규직으로 고용한 인원은 16명(관리자급 직원 포함)뿐이다. 나머지 7명을 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이들에게는 원청으로부터 받은 타결성과금, 명절상여금 등을 지급하지 않았다. 노모(26)씨는 “정규직 직원들이 받는 성과금을 못 받거나, 휴가비 등을 적게 받았다”며 “지난해 계약직 직원들의 연봉은 정규직 직원들의 연봉에 비해 700만~1,000만원 가량 적었다”고 밝혔다. 노씨는 월급은 200만원(세전) 안팍이다.
'사람 장사'로 도급계약을 따내기만 하면 쉽게 이익을 챙길 수 있다보니 계약을 따내기 위해 하청업체 대표가 원청에 금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지난해까지 맥주 물류운송회사에서 근무했던 권오철(48)씨는 “OB맥주가 C업체에 물류운송을 위탁했고, C업체가 다시 내가 속한 물류업체에 재하청을 줬다”며 “지난해 소속 회사 사장이 C업체 직원에게 외제차와 오피스텔을 제공한 것이 적발돼 계약이 해지됐다”고 말했다.
김인수 민주노총 전국민주연합노조 정책국장은 “하청업은 중간착취로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어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이 때문에 로비를 해서라도 계약을 따내려 하고, 계약에 성공하면 투자금을 뽑아내기 위해 더 많은 금액을 중간에 착취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하청구조는 비용절감을 위해 도입된 제도인데, 지난 20년간 득보다 실이 크다는 점이 입증됐다”며 “직영화로 돌아가는 것이 하청구조의 폐단을 없애는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간접고용 노동자 100명에게 들었다 인터랙티브 바로 가기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indirect_la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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