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경주
편집자주
진보 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가 대한민국 곳곳을 다니며 역사적 장소와 현재적 의미를 찾아보는 ‘한국근대현대사 기행’을 매주 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한다. 코로나19시대 '의미있는 여행'의 안내자가 되고자 한다.
“너 이 새끼들 똑바로 안 서!” 검은 장갑을 낀 재벌그룹의 회장은 청계산 자락의 한 공사장 창고에서 몽둥이를 든 경호원과 조폭들의 호위 속에 잡아온 술집 종업원들의 눈을 집중적으로 가격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들이 이들이 일하는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직원들에게 눈을 맞았기 때문이다.
“내 비행기에서 내려!” 이로부터 7년 뒤, 뉴욕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활주로로 나가던 대한항공 비행기에서 대한항공 소유주의 딸인 부사장은 승무원을 무릎을 꿇리고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승객들이 탄 비행기를 게이트로 회항시켰다. 대한항공은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승객들을 배려해 땅콩을 봉지 채로 제공하는 것이 규정인데, 이 승무원이 규정대로 땅콩을 접시가 아니라 봉지 채로 갖다 줬다는 이유였다.
이 두 사건은 우리나라의 재벌 등 부유층의 갑질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다. 한 마디로, 이 사건들은 상류층일수록 도덕적 책임이 크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안타깝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실종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도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왕릉들이 즐비한 경주의 중심가 교동에는 고풍스러운 고택이 자리 잡고 있다. 유명한 경주 최 부잣집이다. 최 부잣집은 원래 99칸이었다고 하는데, ‘최부자 아카데미’, 한정식으로 유명한 식당인 요석궁, 그리고 최 부잣집에 비법술로 내려오는 경주 교동법주 등 이런저런 부대시설들을 떼어내서 현재 남아있는 집은 생각보다 작았다. 소슬한 대문역시 “이게 만석 부잣집 맞아?”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작고 검소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목재 곳간 중 가장 큰 곳간으로 800석의 쌀을 보관할 수 있다는, 엄청난 크기의 곳간을 보면, 이 집이 만석 부자였음을 실감할 수 있다. 사랑채 역시 의병장 신돌석, 최익현 등 쟁쟁한 인사들이 신세를 지고 간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역시 가장 감동적인 것은 마당에 놓여 있는 큰 판때기다. 그 판때기에는 이 집에 대대로 내려오는 유명한 ‘육훈(六訓), 즉 여섯 가지 가훈이 쓰여 있다.
1. 과거를 보되 진사이상 벼슬을 하지 마라.
2. 만석 이상의 재물은 사회로 환원해라.
3.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4.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5. 주변 100 리 안에 굶은 사람이 없게 하라.
6. 시집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만 입어라.
육훈 하나하나가 가슴을 울린다. 특히 3번과 5번이 압권이다. 흉년에는 땅을 가진 농민들도 생계가 어려워 땅을 헐값에 내놓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자들이 땅을 사 모으기에 혈안이 되기 마련인데,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니! 뿐만 아니라 흉년에는 아무나 와서 쌀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아예 곳간 문을 열어놨다고 한다. 이정도 되면, 최 부잣집이 지주이긴 하지만, 지주 중에서는 ‘참아줄만한 지주’, ‘존경할만한 지주’였다. 게다가 부자는 3대 가기가 어렵다는데, 이 집은 12대나 갔다. 150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 무려 400년간 연간 쌀 만석을 거두어들이는 만석 부자로 산 것이다.
최 부잣집 정도는 아니지만 비슷한 부자가 호남에도 있다. 전남 구례에는 운조루(雲鳥樓)라는 고택이 있다.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있는 집’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이 집은 조선 후기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가 지은 집으로 볼 것이 많은 고택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볼 만한 것이 엉뚱하게도 부엌이다. 부엌에 가면 큰 원통형의 뒤주(쌀독)가 있는데 그 쌀독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누구나 이 쌀독을 열 수 있다’는 뜻으로 흉년이 들었을 때 누구든 와서 이 독에서 쌀을 가져갈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최 부잣집, 유 부잣집과 달리 독신으로 살아 대를 잇지는 않았지만, 앞에서 소개한 제주의 자수성가 여성CEO 김만덕도 제주에 기근이 나자 전 재산을 털어 쌀 500석을 사들여 친척에서 50석을 나눠주고 나머지 450석으로 관덕정에 솥을 걸고 죽을 써서 제주도민 3분의 2에게 나눠 줬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오래 전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이 있었다.
다시 이야기를 최 부잣집으로 돌아가 보자. 주목할 것은 150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 12대에 걸쳐 이어간 최 부잣집의 만석부자가 12대에 그치고 말았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12대 부자였던 최준(1884-1970)선생이 400년 내려온 재산을 거덜 낸 것이다. 그러나 집안을 말아 먹은 많은 부잣집 도령들이 그러하듯이, 그가 주색잡기나 도박, 마약에 빠져 재산을 말아먹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엉뚱한 사업을 벌려 재산을 탕진한 것도 아니다. 그는 나라가 망하자, 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에 군자금을 대다가 감옥을 가야했다. 감옥에서 나온 뒤에도 백산상회라는 위장회사를 만들어 이를 통해 상해 임시정부의 김구선생에게 거액의 군자금을 보냈다. 해방이 되자, 그는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전 재산을 기부해 대구대학 등을 설립했다. 즉 그는 일제 하에서는 독립운동을 위한 독립자금에, 해방 후에는 교육 사업에 전 재산을 ‘탕진’한 것이다. 한마디로, 최준 선생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그 어느 조상들보다도 철저하게 실천한 것이다. 그 공으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최 부잣집을 나오면 최부자 아카데미가 있다. 이곳에서는 정부기관과 기업의 위탁을 받아 공무원들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최 부잣집의 가치 등에 대해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창호 아카데미 상임이사에 따르면, 일 년에 최 부잣집을 찾는 사람들은 20만 명,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3,000명 정도라고 한다. 아카데미에서 향교를 지나 조금 더 가면 교촌홍보관이 있다. 이곳에는 최 부잣집이 어떻게 12대 만석부자를 유지해 왔는가하는 가계와 독립유공자 최준 선생의 사진 등을 접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최준 선생이 전 재산을 던져 세운 대구대학 등 교육사업의 이후 이야기이다. '한겨레'(2013년 2월 2일자), '중앙일보'(2017년 6월 14일자) 등의 보도와 2012년 국회에서 열린 영남학원 재단정상화를 위한 토론회 등에서도 밝혀졌지만, 박정희 정권은 1967년 최준씨가 대구대학 운영을 맡긴 이병철의 사카린 밀수사건과 청구대학 건설현장의 대형사고 등에 대한 사법처리를 면제해주는 대가로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휘 아래 두 대학을 영남대학으로 통합, 접수했다고 한다. 영남대 설립이사에 최준선생도 포함시켰지만 허수아비였고 실질적인 운영은 다른 이사들인 이후락, 이효상, 백남억, 신현확 등 정권실세들이 좌지우지했다. 몇 년 뒤 최준선생은 이사에서조차 쫓겨났다.
1980년 들어서는 박근혜가 사실상의 소유주로 이사장에 앉았고 “영남학원의 창학정신(고 박정희 대통령의 설립정신)을 정관 전문으로 채택하자”는 한 이사의 제안에 따라 ‘교주 박정희’를 명문화했다. 87년 민주화 흐름 속에서 재단비리가 드러나 박근혜와 측근들은 이사직에서 물러나고 임시이사체제가 들어섰다가,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자 박근혜체제가 복원됐다. 이후 2016년 촛불항쟁에 일어나 박근혜가 탄핵을 당하고 감옥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영남대학교 재단환수를 통한 정상화 운동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이사회는 총장선출과정 개혁약속을 깨고 일방적으로 박근혜의 최측근을 총장으로 선출했다.
최창호 상임이사는 “할아버지가 대구대학에 기증한 재산에는 경주지역 땅 70만평이 있는데 그 땅이 영남대학의 소유로 넘어가 경주시가 공공사업을 추진하려면 영남대에 거액을 주고 땅을 구입해 실행해야 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고 분노했다. 최 부잣집 고택 등도 법적으로는 영남대 소유로 영남대가 쫓아내면 최 상임이사 등도 쫓겨나야할 판이라고 한다. 촛불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비정상의 정상화’가 그리 어려운 것인가?
최 부잣집을 떠나며, 빨리 비정상이 정상화되고 재벌들과 졸부들이 최 부잣집의 ‘육훈’을 배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은 살만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 낼 수 없었다. 아니 재벌 3세, 4세들이 반드시 최부자 아카데미에 와서 육훈과 최 부잣집의 가치에 대한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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