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회견, 뒤늦은 해명으로 빛 바래
남은 1년, 참모들에 책임 미룰 여유 없어
전면에 나서서 어려운 결단 직접 내리길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신년 회견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에 대해 언급했으나 국민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여론의 반대가 높은 상황에서 원론적 수준 이상의 발언을 하기 어려울 거라는 예상대로였다. 정작 눈길을 끈 것은 오랜만에 기자들 앞에 선 문 대통령의 모습이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대통령이 답한 것은 지난해 신년 회견 이후 꼭 1년 만이니 그럴 만도 하다. 이를 지켜본 국민의 반응은 보수·진보 진영이 다르지 않다. “저런 장면을 왜 이제야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그 동안 쏟아낸 말은 국무회의나 각종 행사 등에서의 일방적 ‘말씀’이 고작이었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살아 있는 대통령의 말이 아니라 죽은 말이었던 셈이다.
문 대통령은 회견에서 그 동안 국민이 알고 싶었던 얘기들을 쏟아냈다. 추미애ㆍ윤석열 갈등, 부동산 정책, 백신 공급 논란 등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 답변에 수긍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적은 것은 타이밍이 한참 늦어서다. 추ㆍ윤 문제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던 때, 자고 나면 집값이 올라 서민들의 억장이 무너질 때, 다른 나라의 코로나 백신 확보 소식에 국민들이 불안해할 때 대통령이 직접 나와 기자들 질문에 사과하고 해명하고 위로했어야 했다.
많은 이들은 취임 전부터 소통을 강조하던 문 대통령이 언제부턴가 국정 현안에 침묵하거나 보이지 않는데 대해 의아해하고 있다.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중요한 내용은 대통령이 직접 말씀드리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쩌다 문 대통령은 ‘불통 정권’이라고 스스로가 비난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걸까.
가장 큰 이유는 탁현민 비서관이 연출하는 행사에 대한 과잉 의존이다. 취임 직후 참모들과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청와대를 산책하는 장면부터, 최근 논란이 된 모델하우스 임대주택 방문까지를 보면 문 대통령이 겉보기의 효능감에 지나치게 매료된 게 아닌가 싶다. 잘 짜인 각본에 따른 행사와 각종 회의를 통해 전달되는 말씀이 국민의 궁금증과 불만을 직접 돌파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여긴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측근들에 대한 지나친 신뢰다. 문 대통령은 사람을 한 번 믿으면 절대적인 신임을 보낸다. 장관과 참모들에게 적극적 역할의 기회를 준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나 잘못을 바로잡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참모들 간 치열한 토론이 없다 보니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도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다. 대통령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기 십상이다. 강준만, 진중권씨가 “남이 써준 연설문을 읽은 의전대통령”이라고 비판한 것을 뇌피셜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원인이 무엇이든 임기가 1년여 남은 문 대통령의 사정은 여유롭지 않다.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후 역사와 국민에게 어떤 대통령으로 평가될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총리나 장관, 당 대표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참모들 탓이라고 핑계 댈 일이 아니다. 최근의 이런저런 논란에 “대통령이 이미 지시했다”는 청와대 해명이 있었는데 버스 지난 뒤 손 흔드는 격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요즘 문 대통령에게서 달라진 모습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에 충성도 높은 인사를 발탁하자는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소통에 강점이 있는 유영민 전 장관을 낙점한 것과 추 전 장관에 대한 사실상 ‘경질’ 결정이 문 대통령 작품이라는 게 여권 관계자의 전언이다. 문 대통령 나름대로 절박감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리더의 책임에 대해 아직도 공직사회에 회자되는 연설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0년 해양수산부 장관이 되면서 한 취임사다. “여러분에게 쏟아지는 매는 제가 맞겠습니다. 일을 추진하다 생긴 실수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으면 그 모든 책임은 여러분이 져야 할 것입니다.” 바로 국민이 문 대통령에게서 듣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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