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아픈 손가락'으로 품고 왔던 스마트폰 사업 철수 가능성을 공식화했다. 5년 넘게 이어온 적자를 감당하기엔 한계에 달했다는 자체 진단에서다. 이로써 1995년 휴대폰 시장에 뛰어든 LG전자는 20여년 만에 핵심 사업을 접어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됐다.
"모바일 사업 매각 등 모든 가능성 열어두고 검토"
권봉석 LG전자 최고경영자(CEO) 사장은 20일 스마트폰 사업 중심의 MC사업부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MC사업본부의 사업 운영 방향이 어떻게 정해지더라도 원칙적으로 구성원의 고용은 유지되니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최근 시장에서 제기된 '스마트폰 사업 매각설'에 대해선 "현재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사업 운영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동안 적자에 허덕인 LG전자 스마트폰 사업에 대한 철수설은 꾸준하게 제기됐지만 최고경영진에서 직접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권 사장은 현재 MC 사업본부의 현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권 사장은 "MC 사업본부가 2015년 2분기 이래 23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이어가 지난해 말 기준 누적 영업적자가 5조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MC 사업본부 운영에 대한 결정이 더 늦어질 경우 손실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란 해석으로 풀이된다.
권 사장은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비즈니스의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며 "LG전자는 모바일 사업과 관련해 현재와 미래의 경쟁력을 냉정하게 판단해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고 글로벌 시장에서 MC사업본부의 현주소도 재확인했다.
MC본부 10%는 희망퇴직
LG전자측은 일단 권 사장의 이번 발표에 대해 "아무것도 결정된 건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LG전자가 사실상 '스마트폰 사업 철수' 수순에 들어갔다는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다. 본보 취재 결과 이달 초 LG그룹 차원에서도 '휴대폰 사업 철수'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환으로 기존에 진행 중인 휴대폰 개발은 전부 중단시킨 건 물론 이에 따른 인력 개편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구인력은 30%만 남기고 나머지 60%는 전환배치와 10%는 희망퇴직의 형태다.
LG전자가 이처럼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고 나선 건 스마트폰 사업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컸기 때문이다. LG전자는 2000년대 중반만 해도 보급형 가격대의 '피처폰'으로 세계 휴대폰 시장 3위까지 오르면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피처폰 흥행에 취했던 LG전자는 2009년 시작된 스마트폰 시대에 뒤늦게 대응하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애플의 아이폰이 전 세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고 삼성전자가 다급히 갤럭시S 시리즈를 준비하는 동안 LG전자는 후발주자로 뒤처졌고, 결국 스마트폰 시장 주류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이후, 명성 회복을 위해 발 벗고 나섰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지난 2019년 비용 절감을 위해 경기 평택의 스마트폰 생산라인을 베트남으로 옮겼고 최근 10년 동안 인력 구조조정에도 속도를 냈다. 이 기간 MC 본부 직원수는 9,467명에서 3,724명으로 60%나 줄였다. MC 본부는 지난해에도 8,000억원에 가까운 영업적자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와 내년 역시 영업적자 폭이 줄어들 뿐 적자는 기정사실로 점쳐지고 있다.
LG, 돈 안되는 사업 접고 AI, 전장 집중
재계에선 향후 LG전자가 성장 정체기에 놓인 스마트폰 사업 대신 전기장치부품(전장)이나 인공지능(AI), 로봇 사업 확대에 매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LG전자가 지난달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사인 캐나다의 마그나와 손잡고 '전기차 부품 합작사'를 세우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LG전자로선 미래 먹거리를 키우는 게 절실한데 결국 돈 안되는 사업은 접고 그 돈으로 전기차, 전장사업, 로봇 등 미래 먹거리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뜻이다"고 해석했다.
시장에선 LG전자의 이번 발표를 반기는 눈치다. LG전자 주가는 이날 모바일 사업을 매각할 수 있다는 소식에 전날보다 12.8%나 급등, 52주 최고가를 기록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스마트폰 기술이 그룹에 도움될 수 있다는 명분으로 그간 버텼지만 그게 LG전자의 미래 성장을 막는 걸림돌이 됐다"며 "기업가치가 크게 상승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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