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회가 새 지도자 맞이로 들뜬 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사면초가에 빠졌다. ‘극성팬’을 자처하며 그의 든든한 보호막이 돼 줬던 극우단체가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돈 줄도 점점 말라가고 있다. 백악관을 떠나며 “어떤 식으로든 돌아오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퇴임 직후 맞닥뜨린 현실은 녹록지 못한 듯하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트럼프 지지 의사를 표명했던 극우성향 단체들이 “하나 둘 ‘손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결정적 계기는 6일 국회의사당 폭동 사태였다. 사건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들을 대변하지 않고 폭력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며 선을 긋자 ‘배신감’이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이날 이들의 불만은 폭발했다. 계엄령을 선포해서라도 백악관을 사수하리라 굳게 믿었던 트럼프가 조용히 후임자에게 자리를 내준 탓이다.
극우 대표단체 ‘프라우드 보이스’가 주로 이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을 패배자, 배신자로 폄하하는 게시글들이 넘쳐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나 공화당을 위한 집회에 발길을 끊자는 목소리도 잇따랐다. 이들뿐이 아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음모론 집단인 큐어넌의 친(親)트럼프 성향 구성원들도 “우리 모두 사기를 당했다”며 손절 분위기로 돌아섰다. 큐어넌은 취임식 당일 쿠데타로 트럼프가 정권을 유지할 것이라는 음모론을 퍼뜨려왔던 주범이다.
신문은 “트럼프의 팬심이 쪼개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했다. 여전히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도둑맞았다고 믿는 열성 지지층도 있으나 오스키퍼, 아메리카 퍼스트, 쓰리 퍼센터스 등 다른 극우단체 내부에서도 트럼프 비판론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걱정거리는 또 있다. 안락한 퇴임 이후를 뒷받침해 줘야 할 호텔, 골프장 등 개인사업 매출이 속절없이 추락한 것이다. 지난 한 해 미 전역을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트럼프도 비껴가지 못했다. NYT가 입수한 트럼프그룹 재무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매출(약 3,055억원)은 전년 대비 38%나 감소했다. 상황이 가장 심각한 사업체는 전년보다 매출이 63% 급감한 워싱턴호텔이다. 트럼프 내셔널 도랄 마이애미 골프클럽도 매출이 40% 줄었다. 트럼프가 개인 보증을 섰던 회사 부채 3억달러(약 3,297억원) 역시 퇴임과 함께 몇 년 안에 상환해야 하는 ‘빚 폭탄’으로 돌아왔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의회 침탈 사태 여파로 금융, 보험, 골프, 부동산 등 여러 분야의 협력 업체들이 줄줄이 트럼프 회사들과 사업적 관계를 끊고 있다. 이날도 세무법인 모건 루이스가 트럼프 및 그의 회사와 신규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앞서 트럼프 골프클럽에서 대회를 열던 미국 프로골프협회(PGA)가 계약을 해지했고, 뉴욕시도 아이스링크와 골프장 등의 운영 계약을 취소하는 등 트럼프의 재무 상태는 나빠질 일만 남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