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는 올해도 신춘문예로 새해를 열었다. 주요 일간지들이 수십 년을 이어오고 있는 문인들의 등단 제도이자 국민 백일장이다. 신춘문예는 1919년 매일신보가 연말 문학작품 공모를 실시하며 처음 시작됐다고 한다. 매해 1월 1일 여러 신문사들을 통해 동시에 신인작가가 배출되는 일은 전세계에서 유일한 우리만의 제도다.
일주일 전이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는 예전 신년호 신문을 받아 들면 신춘문예 섹션을 꼼꼼히 읽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잘 안 펼치게 된다고 했다. 그만큼 문학이 멀어진 것 같다고. 그는 시와 소설 말고 볼만한 게 너무 많아져 그런 것이라며 애써 말끝을 다듬었다.
마침 그날 오후엔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열렸다. 시상식은 평소에 비해 초라했다. 예전 같았으면 화려한 식장을 빌려 수상자의 가족과 친구들까지 부른 축제의 장으로 치렀을 텐데 코로나19로 행사를 간소화해야 했다. 행사장은 신문사 회의실로, 참석자는 행사 진행 측 외에 심사위원 대표 1명과 수상자들로 한정했다. 마스크를 벗지 못해 다과조차 마련할 수 없었다.
투명 칸막이를 두고 어색하게 앉아있어야 했지만 수상자들의 표정은 한껏 상기돼 있었다. 차례차례 전하는 그들의 수상소감에선 푸릇푸릇 봄빛이 뿜어져 나왔다. 자신의 들뜸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대견함에 울컥 취하기도 했다. 등단이란 게 본격적으로 고단한 문인의 삶으로 접어들어가는 길임에도 그 순간만큼은 마냥 즐거웠다.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시를 오랫동안 혼자 쓰는 것이 부끄러웠다는 당선자는 이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저는 시를 좋아합니다. 저한테는 시밖에 없어요.” 또 다른 당선자는 “이 마음이 오래 가기를, 단단한 보석처럼 쥐어지기를 바란다”며 각오를 다졌다.
한겨울에 발표하면서 왜 ‘신춘’이라 했는지 의아해했는데, 그들의 뜨거운 소감에서 비로소 신춘의 싱그러움을 읽을 수 있었다. 시상식에서 받은 기대 이상의 감동은 그 푸릇한 젊음 때문이었나 보다. 근래 이어졌던 다른 문학상, 출판상 시상식과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담당 기자는 신춘문예만의 특별함이 있다고 했다.
문학의 위세는 분명 예전 같지 않다. ‘문학은 죽었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미 오래 전이다. 하지만 신춘문예는 오랜 시간에도 여전히 청청하다.
이번 한국일보 신춘문예엔 시, 소설, 희곡, 동화, 동시 5개 부문에 총 2,000여명 이상이 응모했다. 지난 10여 년 응모자 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연말 신춘문예 철이 되면 가장 바빠진다. 응모 방법을 묻는 문의전화가 끊이질 않고, 작품을 담은 우편물들이 쇄도한다. 담당 기자는 몇 날 며칠을 끝없이 누런 봉투를 뜯으며 심사를 준비한다. 결과가 나온 크리스마스 즈음엔, 조심스레 당선 여부를 묻는 전화가 이어진다. 죄송하지만 내년을 기약해달라는 답변에 수화기 너머에선 무거운 한숨이 떨어진다.
문청들은 여전히 신춘문예 열병을 앓고 있다. 한 줄의 문장을 얻는 지극한 기쁨 때문에 꿈을 놓지 않으려 한다. “가장 여린 자리에서 가장 강한 힘이 나온다는 걸 믿는다. 두려움 없이 뚜벅뚜벅 머나먼 길을 걸어가겠다”는 이제 막 새로운 출발선에 선 ‘신춘’ 작가들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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