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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서 낳은 핏덩이 교복에 싸서 베이비박스에 오는 심정 아시나요”

입력
2021.01.29 13:00
수정
2021.01.29 19:1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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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엄마] <2>베이비박스의 엄마들

<베이비박스에서 보낸 3일> ②상담 엄마들

‘어쩌다 이렇게...’ 기구한 속사정 듣는 이들
“함께 펑펑 울기도… 그 순간엔 내가 부모”

이종락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는 2009년 한국에선 처음으로 베이비박스를 만들었다. 아기를 안고 베이비박스까지 오는 친모들은 삶의 큰 위기를 겪는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도움의 손길이었고, 그 첫 단추를 상담으로 열었다. 이한호 기자

이종락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는 2009년 한국에선 처음으로 베이비박스를 만들었다. 아기를 안고 베이비박스까지 오는 친모들은 삶의 큰 위기를 겪는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도움의 손길이었고, 그 첫 단추를 상담으로 열었다. 이한호 기자

‘띵~동.’

벨이 울리고 길어야 10초. 상담사들이 베이비박스 혹은 베이비룸으로 달려가 엄마들을 붙잡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서울 관악구 난곡로의 주사랑공동체가 운영하는 위기영아 긴급보호센터에는 상담사들이 상주한다.

“애기 엄마!”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는 엄마들 표정은 그야말로 엉망이다. “애기 놓고 가는 엄마 심정이 어떻겠어요. 멀쩡한 엄마는 없어요. 서성이고 망설이다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놓고도 발길을 확 돌리지 못하죠. 아이 낳아본 사람은 알아요. 평생 잊지 못한다는 걸.”

딸 셋 엄마이기에 가늠할 수 있는 심정. 이혜석(57) 선임 상담사는 그래서 이 엄마들이 더 애처롭다. 그렇기에 이런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건지도. “혼자서 아이 낳느라 얼마나 힘들었어요? 그런데도 이 아이 살려와서 고마워요.” 가까스로 상담실에서 마주앉은 엄마들은 이 말에 마음이 무너지고 빗장이 풀어진다.

◇자신의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사연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기고 가는 생모들이 남긴 편지들. 눈물 자국이 보인다. 이한호 기자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기고 가는 생모들이 남긴 편지들. 눈물 자국이 보인다. 이한호 기자

베이비박스까지 찾아온 엄마들은 그야말로 생의 낭떠러지 앞에 선 사람들이다. 제 부모에게도 숨긴 채 몰래 집 욕실에서 혼자 출산한 10대가 그렇고, 단칸방에서 하루에 컵라면으로 겨우 한 끼를 때우며 임신 기간을 버틴 빈곤한 엄마가 그러하며, 애를 가진 사실조차 모르다 배가 부르고 불러서야 알아차린 성폭력 피해자들이 그렇다. 이곳 상담사들은 이 ‘벼랑 끝 엄마들’의 손을 잡아주는 거의 유일한 존재다.

“보통의 산모들은 진통할 때 배도 만져주고 등도 쓸어주면서 옆에서 힘내라고 용기 주는 남편이나 친정엄마가 있잖아요. 여기 오는 엄마들은 대개 혼자 아기를 낳아요. 임신부터 출산까지 철저히 홀로 견디다 오는 거예요. 새 생명이 주는 기쁨이 있지만, 그걸 온전히 누릴 수도, 나눌 수도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죠. 그러니 그 슬픔과 고통이 목까지 차올라 있어요. 자신의 엄마에게도,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사연들을 갖고 있죠.”

베이비박스의 상담사들은 네 명이 돌아가며 24시간 상시 근무를 한다. 아기를 두고 가는 엄마들은 짧든, 길든 상담사와 대화를 나눈다. 2020년에도 아이를 맡긴 친부모 137명(모 135명, 부 2명) 중 98%가 상담을 했다. 이달 초 폭설로 그러잖아도 유난히 가파른 이 동네가 빙판길이 돼 상담사가 쫓아가지 못한 경우 같은 상황을 제외하곤 거의 상담이 이뤄진다.

◇생모들까지 살리려 시작한 상담

베이비박스(왼쪽)와 베이비룸은 모두 사무실 내부와 연결돼 있어 감지 센서가 울리자마자 상담사와 보육사가 달려 나온다. 이한호 기자

베이비박스(왼쪽)와 베이비룸은 모두 사무실 내부와 연결돼 있어 감지 센서가 울리자마자 상담사와 보육사가 달려 나온다. 이한호 기자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2009년 12월 이종락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가 베이비박스를 만들 때만 해도 아기를 안전하게 받는 게 우선이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기를 두고 간 친모들이 새벽에도 전화를 걸어 통곡했던 거다.

“목사님, 우리 애기 어떻게 됐나요.” “새끼 버린 나 같은 건 죽어야 해요. 옆에 약도 타놨어요.”

죄책감과 그리움이 한데 섞인 울음이었다.

베이비박스를 만든 지 1년 즈음 됐을 땐 불과 11개월 만에 또 아이를 안고 온 열다섯 소녀까지 생겼다. 혼자 방에서 낳아 아기 탯줄도 채 떼지 않은 상태였다. 이 목사는 ‘소녀 엄마’를 붙잡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엄마이기 전 그는 가장이었다. 소녀의 부모는 이혼하고선 자식들도 내팽개쳤다. 방 한 칸에서 동생들까지 먹여 살리려 소녀가 찾은 방도는 이른바 ‘원조교제’. 아이가 그렇게 태어났다. “목사님, 이 아기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소녀도 울고, 이 목사도 울었다.

‘안 되겠다. 엄마들을 반드시 만나야겠구나.’ 아기뿐 아니라 엄마들까지 살리려면 그래야 했다. 이듬해 11월부터 이 목사는 아기들을 두고 가는 엄마들을 붙잡고 밤낮없이 상담하기 시작했다.

“여기 오는 아이 엄마들은 거의 100%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어요.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경우도 많죠. 남자와 사회에 분노도 심하고요. 하도 자기 무릎을 때리면서 하소연을 하기에 뿅망치와 베개를 갖다주면서 이걸 치라고 했더니 얼마나 울분을 토하며 쳤던지 베갯잇이 터져서 솜 뭉치가 다 빠져나온 적도 있죠.”

어떤 사연을 풀어놓는 걸까.

“아기를 가진 걸 알고 한강까지 갔다가 도저히 아기까지 죽일 수 없어 온 엄마, 이미 손목을 그어서 붕대를 감고 온 엄마, 아이 아빠는 몸을 다쳐 돈을 벌 수 없는데 다섯째 자식을 가져 도저히 키울 길이 막막해서 살려달라고 울며불며 온 엄마…”

그중에서도 10대 엄마들이 적지 않은 수다. 지난해에도 베이비박스에 온 친모 중 10%가 10대였다.

“특히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이 임신을 하면 설 자리가 없어요. 학교에선 자퇴해야 하고 패가망신이라며 가족도 등돌리죠. 혼자 산에서 아기를 낳고는 파묻으려다 차마 죽이지 못해서 흙투성이 핏덩이를 교복에 둘둘 말아온 소녀들도 있었어요. 이 사회가 그 아이들을 비난하고 정죄할 수 있나요? 그렇게 되기까지 과정이나 사정은 듣지도 않고 돌팔매질 먼저 할 수 있나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들은 아기를 지켰어요.”

◇10명 중 2명은 아이를 데려간다

주사랑공동체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생모나 생부를 지원하는 사업도 한다. 한 달에 한 번 아기용품과 옷까지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베이비 케어 키트를 보내주는 거다. 키트에 들어가는 물품 중 일부. 이한호 기자

주사랑공동체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생모나 생부를 지원하는 사업도 한다. 한 달에 한 번 아기용품과 옷까지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베이비 케어 키트를 보내주는 거다. 키트에 들어가는 물품 중 일부. 이한호 기자

상담을 하고 보니 상담으로 끝낼 수가 없었다. 아기를 키울 의지는 있으나 생계가 문제라면 취업을 도왔고, 있을 곳이 없다면 머물다 가라고 했다. 지금도 상담에서 우선 권하는 건 직접 양육이다.

“상담하면서 우리가 도울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생모가 키우기를 가장 많이 설득하죠. 신변 정리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동안 위탁시설에 아기를 잠시 맡길 수도 있고요.”(이혜석 선임 상담사)

살길이 보이지 않았던 엄마들이 그런 도움을 받아 마음을 돌렸다. 현재는 미혼부모지원사업으로 규모가 커져 한 달에 한 번씩 베이비 케어 키트를 보내고 생계비도 지원한다. 키트엔 기저귀와 분유, 아기 옷, 엄마 옷, 세제 같은 아기용품과 생필품이 두루 들었다. 지난해에도 베이비박스에 왔던 엄마 10명 중 2명이 아이를 다시 찾아가 키운다.

살 궁리를 하다 도저히 안 돼 베이비박스까지 찾은 친모들, 그들과 얼굴을 맞대는 시간만큼은 이 목사도, 상담사들도 친모들의 ‘엄마’가 돼 주는 거다.

“부디 아기 엄마의 마음이, 그 인생이 치유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들으니까요. 그건 부모의 심정이죠.”(이종락 목사)

“상담하는 동안 꾹꾹 눌렀던 마음이 그들을 위한 축복 기도를 해줄 때만큼은 주체할 수가 없어져서 내 눈에서도 눈물이 마구 흘러요. 그들의 인생을 생각하며 기도하니까요.”(이혜석 선임 상담사)

▶①”띵~동! 1835번째 아기가 왔다, 베이비박스의 하루” 기사 보기

김지은 인스플로러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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