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주현·김성혜·이상경·박준희 프로파일러
편집자주
범죄 드라마나 영화에서 '초능력자'처럼 등장해 범죄자의 감정선을 무너뜨리는 프로파일러. 그러나 실제 프로파일러는 끊임없이 범죄자 심리나 행동패턴을 분석해 범행의 이유를 찾는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월요일마다 범죄 현장 뒤에서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는 프로파일러의 세계를 조명합니다.
프로파일링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미제 살인사건이다. 15년간 미궁에 빠졌던 갱티고개 노래방 여주인 살인사건(관련기사: 4300쪽 기록 되짚어 찾은 '2명의 공범' 가능성...15년 미제 풀었다), 일본 오사카 니코틴 살인사건(관련기사: 계획된 알리바이 술술 읊던 사이코패스, 심리 부검에 무너졌다)에서 프로파일러들은 시간과 거짓말 뒤어 숨었던 진범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냈다.
그런데 살인 등 강력 사건만 프로파일링의 도움을 받아야 할까. 일반인들은 살인사건에만 프로파일링이 필요할 것이라고 여기지만, 실제 현업에서 활동하는 프로파일러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한국일보가 만난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과 소속 프로파일러 이주현(42)·김성혜(40)·이상경(38) 경위와 박준희(36) 경장은 이구동성으로 "데이트 폭력과 같은 여성·청소년 사건이야말로 프로파일러의 지원이 필요한 분야"라고 말했다.
왜일까. 강력 사건에서는 폐쇄회로(CC)TV 영상이나 지문처럼 분명한 증거가 있는 경우가 많지만, 데이트 폭력 사건은 연인 사이 은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탓에 물증보단 진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주장이 엇갈리는 경우 진실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은 셈. 2008년 프로파일러에 입문한 이상경 경위는 "데이트폭력 범죄는 가해사실과 피해사실을 증거로 명확하게 입증할 수 있는 사건이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만약 연인 사이에서 가학성 행위가 발생해 한 명은 일방적 피해를 주장하고 또 다른 한 명이 가학적 성향을 주장한다면, 어떻게 진실을 가려낼 수 있을까.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상대를 무고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데이트 폭력으로 쉽게 단정 짓기도 어렵다.
2019년 송파경찰서에서 의뢰가 들어온 데이트 폭력 사건도 이와 비슷했다. 남성은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여성은 성적 피해를 호소했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심한 가학행위가 이어졌다는 진술이 나와, 수사팀도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정말 피해가 발생한 것인지, 가학행위를 당하면서도 여성이 연인 관계를 지속한 이유는 무엇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파일러는 사건 당사자들에 대한 심리 분석이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팀을 이끄는 이주현 경위가 다른 사건을 지원하느라 바쁜 사이 김성혜·이상경 경위와 팀 막내 박준희 경장이 사건 당사자 면담에 나섰다. 김성혜 경위는 "데이트폭력 사건에서는 물증이 없어 두 사람의 관계를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며 "프로파일러가 투입되면 피해자나 피의자가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이런 말을 하는지에 대해 분석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프로파일러들은 심리 분석을 통해 평범한 외면 안에 숨어 있던 가해 남성의 가학적 특성을 포착해, 유죄 판결을 받아내는 데 기여했다.
프로파일링 기법은 2000년 서울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에 범죄행동분석팀이 설치되면서 활용되기 시작됐다. 벌써 역사가 21년. 그러나 프로파일링의 출발이 형사과이다보니 프로파일러들은 주로 강력 사건에 투입돼 왔다. 최근 들어 형사과 소관이 아닌 여성·청소년 관련 범죄에도 프로파일링을 활용하는 경우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의뢰를 해오는 수사관이 많지 않아 아직 활용도는 높지 않다.
프로파일러들은 여성·청소년 사건과 같은 범죄에서도 프로파일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경찰 조직 내에 자리잡혀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사건을 맡은 수사관 스스로가 필요성을 인식하고 프로파일링을 의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라서 의뢰를 못 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런 사건에도 프로파일러가 투입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네 명의 프로파일러들은 어떤 사건에서도 뛸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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