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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원전 '추진'은 안 했다는데... '검토'만 해도 문제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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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원전 '추진'은 안 했다는데... '검토'만 해도 문제 되나

입력
2021.02.01 04:3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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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3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대북 원전 의혹 긴급 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3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대북 원전 의혹 긴급 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정부가 '대북 원전 건설' 사업을 추진했는지 여부가 정치권 최대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18년 5월 작성된 '뽀요이스(pohjois·북쪽이라는 뜻의 핀란드어)', '북원추(대북 원전건설 추진 방안의 약어로 추정)'라는 이름의 파일을 최근 몰래 삭제한 정황이 드러나면서다. 야권은 이를 근거로 문재인 정부가 대북 원전 사업을 추진하는 "이적 행위"를 저질렀다고 총공세에 나섰다.

반면 대북 업무에 관여했던 전·현직 정부 관료들은 "대북 원전 건설은 과거에도 북한 비핵화 조치를 전제로 추진됐던 사업으로, 앞으로도 비핵화 과정에서 검토해볼 수 있는 사업"이라고 입을 모았다. 즉 비핵화를 전제로 하지 않고 정부가 단독으로 이를 추진했다면 "이적 행위(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라는 야당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지만 비핵화를 기대한 단순 '검토' 였다면 문제될 게 없다는 얘기다.

① 정부 "추진 안했다"...그럼 검토는?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출신의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월 29일 야당이 제기한 대북 원전 의혹과 관련, "문재인 정부에서 있었던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어디에서도 북한 원전 건설을 추진한 적이 없다"고 즉각 밝혔다. 31일 통일부도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USB 이동식저장장치를 통해 대북 원전 사업 구상을 전달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4·27 회담 당시 북측에 전달한 '한반도 신경제 구상'에 원전이라는 단어나 관련 내용은 전혀 없었다"고 부인했다. 정상 간 논의에서 추진된 바 없다고 못박았지만 실무 차원의 검토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 당국도 내부 검토가 이뤄졌을 가능성까지 부인하진 않고 있다. 통일부 소식통은 31일 "비핵화 로드맵이 나왔을 때 국제원자력기구(IAEA) 통제 하에 북한에 원전을 건설해 주는 것도 비핵화 조치에 대한 하나의 보상이 될 수 있다"면서 "브레인 스토밍 차원에서 연구해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산업부도 입장을 내고, "(산업부 공무원 PC에서) 삭제된 파일의 내용을 확인한 결과 정상회담 이후 각 실무 부서별로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를 검토한 것 중 하나"이며 "내부 검토 자료이며 정부 공식입장이 아님을 명시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산업부는 이어 “이 사안은 정부 정책으로 추진된 바 없어 북한에 원전 건설을 극비리에 추진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경수로 착공식에 참석한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대표단 80여 명을 태운 한국해양대 실습선 '한나라'호가 1997sus 8월 18일 하오 공사현장 인근의 양화항을 향해 동해항을 출발하고 있다. 한국일보

경수로 착공식에 참석한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대표단 80여 명을 태운 한국해양대 실습선 '한나라'호가 1997sus 8월 18일 하오 공사현장 인근의 양화항을 향해 동해항을 출발하고 있다. 한국일보


②대북 원전, 비핵화 전제한 상응 조치 중 하나

실제 정부는 1994년 북미 간 제네바합의에 따라 1995년 한반도에너지설립기구(KEDO)를 설립하고 1,000MW급 경수형 원자로 2기 건설을 추진했다. 물론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거듭난 지금과 핵실험 경험조차 없던 당시를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기 위한 실효적 방안으로 오랫동안 검토되고 있었던 셈이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KEDO 사업 당시 KEDO 금호사무소 현장사무소장으로 2년 간 근무했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가 설사 KEDO와 비슷한 형태의 원전 건설 구상을 '검토'하더라도 ①비핵화를 전제로 ②미국 등 주변국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실제 '추진'하기는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KEDO에 참여했던 전직 고위 외교관은 "KEDO는 남북은 물론 주변국 간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면서 "산업부 또는 우리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문제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비확산을 목표로한 국제기구인 핵공급그룹(NSG)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에 원전 기술과 핵원료 이전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도 사실상 모든 대북 물자·기술 이전을 금지하고 있다. 외교 당국 관계자는 "비핵화에 묶여 개성공단 조차 재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설명했다.

③靑·여당의 과민반응 왜?

오히려 정부·여당 반응이 필요 이상으로 예민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비핵화 대화가 활발했던 당시로서는 이를 전제로 한 대북 원전도 충분히 검토해 볼만한 사안일 수 있다고 설명하는 대신 "북풍 공작"이라며 대북 원전 건설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부 차관을 지낸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여당이)비핵화라는 희망을 걸고 원론적 차원에서 검토했다고 해명하면 될 일인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면서 "검토 자체만으로도 현 정부의 탈(脫)원전 기조와 모순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듯 하다"고 지적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30일 "뽀요이스 파일과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USB(이동식 저장장치)에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 있는 사실 그대로 밝히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17일 판문점 도보다리 위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고영권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17일 판문점 도보다리 위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고영권 기자


조영빈 기자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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