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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교회 앞 홑겹 옷 침묵시위

입력
2021.02.0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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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벤저민 레이

퀘이커 교도는 17세기 이후 북미 노예제 폐지운동의 선구적 백인 집단이었고, 벤저민 레이는 가장 격렬하고도 급진적인 노예제 반대운동가였다. 1790년 윌리엄 윌리엄스가 그린 레이. 위키피디아.

퀘이커 교도는 17세기 이후 북미 노예제 폐지운동의 선구적 백인 집단이었고, 벤저민 레이는 가장 격렬하고도 급진적인 노예제 반대운동가였다. 1790년 윌리엄 윌리엄스가 그린 레이. 위키피디아.


노예 무역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백인 최초로 조직적 노예제 폐지 운동에 나선 대표적 집단이 개신교 교파인 퀘이커(Quaker, Religious Society of Friends) 교인들이었다. 영국 선교사를 주축으로 17세기 서인도제도의 노예제 실상을 목격한 그들은 설교와 팸플릿 등을 통해 노예제의 신앙적 모순을 폭로하며 주류 집단에 맞섰고, 교단 내 교인들의 계몽에도 힘썼다. 그들이 영국 식민지였던 북미 동부에 정착, 미약하나마 북미지역 노예제 반대운동의 씨앗을 퍼뜨렸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벤저민 레이(Benjamin Lay, 1682.1.26~ 1759.2.8)였다.

영국의 한 퀘이커교인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21세이던 1718년 상선 선원으로 서인도제도 바베이도스에 들렀다가 흑인 노예들의 참상을 본 뒤 노예제 폐지운동가가 됐고, 1731년 필라델피아에 정착해 교회에서,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고, 다수의 팸플릿을 썼다. 퀘이커 교단 내에서도 노예제를 당연시하는 이들이 대다수였고, 그는 따돌림 당하기 일쑤였다.

그는 한 겨울 예배 중인 퀘이커 교회 앞에 맨발로, 외투 없이 홑겹 겉옷만 걸친 채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노예들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노예를 부리는 교인들의 아이를 납치하기도 했다. 그들이 부리는 노예들이 그렇게 납치돼 끌려온 이들이라는 사실을 환기하려던 거였다. 1738년 9월 그는 성경책 속을 파낸 자리에 붉은 베리쥬스를 담은 돼지 방광을 감추고 퀘이커교도 연례 회합장 연단에 서서 '신은 부자든 빈자든, 남자든 여자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모든 인간을 평등하다고 가르치셨다'며 '노예를 부리는 짓이야말로 신에 대한 가장 큰 죄악'이라며 쥬스를 뜯어 신의 피라며 뿌리기도 했다.

키 120cm 남짓의 왜소한 체구에 척추후만증으로 등이 굽었던 그는 정신병자라는 오해 속에 심한 따돌림을 당했지만, 동물들까지 평등하다 여겨 육식을 거부하며 직접 농사지은 채소와 염소 우유만 먹는 삶을 고수했다고 한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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