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드레스 짓밟히고 피에로처럼 살지만...아이유·현아의 '나다움'

알림

드레스 짓밟히고 피에로처럼 살지만...아이유·현아의 '나다움'

입력
2021.02.02 04:30
수정
2021.02.02 11:18
21면
0 0

10여 년 차 여성 아이돌의 메아리

'긍정에 지쳤다.'

그룹 아이오아이와 구구단 출신 김세정은 지난해 낸 솔로 앨범 '화분'에 실린 동명 에세이에 이렇게 적었다. 무대와 카메라 앞에서 늘 웃음을 잃지 않아 '긍정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항상 웃는 사람들은 조금만 표정이 좋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걱정하거나 오해하곤 하는데 저 또한 제 모습이 그렇게 비치진 않을까 늘 걱정하고 조심했었거든요." 최근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종방 직전 본보와 서면으로 만난 김세정이 조심스럽게 털어놓은 속 이야기다.

여성 아이돌은 한결같이 명랑하지 않으면 쉽사리 태도 논란에 휘말린다. 그늘진 여성 아이돌은 도덕적 죄책감을 불러일으켜 남성팬들이 스스로를 '가해자'로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반발을 피하기 위해 "K팝 소녀들은 이미지를 착취당하지만 피해자여서는 안 되는 분열"('소녀들 K-POP 스크린 굉장'·김은하 등)을 겪는다.

이 구조적 모순에서 K팝 여성 아이돌이 '나다움'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이유는 신곡 '셀러브리티'에서 "상상력, 아이덴티티(identity·정체성)까지 모조리 다이어트(diet)"라고, 현아는 신곡 '굿 걸'에서 "나답게 구는 게 왜 나쁜 거야?"라고 노래하며 나를 찾는다. 팬들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적당히 수동적이며 구김살 없이 반복적으로 카메라 앞에 서며 '착하고 무해함'을 강요하는 시선 너머 잃어버린 나를 찾으려는 여성 아이돌로서의 분투다. 기성세대의 문화에서 '나'를 지키려는 나 다움이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사이 화두로 떠오르고, '나답게 살고 있냐고 마흔이 물었다' 등 나다움 관련 에세이들이 유행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는 분석이다.


가수 아이유는 신곡 '셀러브리티'에서 "잊지마 넌 흐린 어둠 사이, 왼손으로 그린 별 하나"라며 "보이니 그 유일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야"라고 노래한다. 이담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수 아이유는 신곡 '셀러브리티'에서 "잊지마 넌 흐린 어둠 사이, 왼손으로 그린 별 하나"라며 "보이니 그 유일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야"라고 노래한다. 이담엔터테인먼트 제공


왼손으로 직접 그린 별... '또 다른 설리'를 위한 응원가

아이유는 지난달 27일 공개된 '셀러브리티' 뮤직비디오 도입부에서 넋을 잃은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다. 얼굴을 알 수 없는 여러 사람이 아이유의 길고 화려한 망토 곳곳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억눌린 아이유는 옴짝달싹 못 한 채 노래를 부른다. 번쩍이는 카메라에 둘러싸인 그의 식탁에 올려진 음식은 점점 줄어들기만 한다. 온순하고 급진적이지 않아야 하는 '여성 아이돌 다움'에 포획돼 자신을 잃는데 대한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늘 존재를 고민해야 하는 아이유는 끝내 여성 아이돌 다움에 포섭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균열을 내려 한다. 아이유는 곡에서 "보이니 그 유일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야"라고 목소리를 낸다. 아이유는 "나의 '별난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적으며 시작했던 가사"로 곡을 만들었다. "그 친구는 시선을 끄는 차림과 조금 독특한 취향, 다양한 재능, 낯가림에서 비롯된 방어기제, 매사에 호오가 분명한 성격 등으로 인해 종종 별난 사람 취급을 받아온 친구"였다고 한다. 아이유는 "그 친구의 그런 특징들 때문에 나는 더욱 그 애를 사랑하는데, 본인은 같은 이유로 그동안 미움의 눈초리를 더 많이 받으며 살아왔다"고 했다. 쉽게 길들지 않고 누군가에 '불온하게' 비쳐 때론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나다움을 찾으려했던 설리를 떠올리게 한다.


아이유는 이 곡 설명글에 이렇게 썼다. "작업을 하다 보니 점점 이건 내 얘기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다. 가사를 완성하고 나니 내 친구나 나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를 주인공에 대입시켜도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내가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소외감을 느껴본 적이 있을 테니까."

그래서 아이유의 '셀러브리티'는 또 다른 '설리들'을 위한 응원가다. 아이유 관계자에 따르면 오른손잡이인 아이유는 앨범 표지에 일부러 왼손으로 비뚤배뚤 곡 영어 제목과 별을 직접 그려 넣었다. 남들과 다르고 이상하게 보여도 나다움을 지킬 때 특별(셀러브리티)하다는 취지가 담겼다. 아이유는 "내 친구를 포함해 투박하고도 유일하게 태어난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며 "당신은 별난 사람이 아니라 별 같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셀러브리티'는 지난달 27일 공개 후 5일째(1일 기준) 멜론·지니 등 양대 음원사이트에서 일간 차트 1위를 달리고 있다.


가수 현아는 새 앨범 '아임 낫 쿨'을 "내 일기장 같은 앨범"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본보에 "나 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노래 '굿 걸'로 자존감을 불어 주고 싶었다"고 바랐다. 피네이션 제공

가수 현아는 새 앨범 '아임 낫 쿨'을 "내 일기장 같은 앨범"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본보에 "나 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노래 '굿 걸'로 자존감을 불어 주고 싶었다"고 바랐다. 피네이션 제공


"나답게 구는 게 왜 나빠?" 무대 오르기 전 현아가 되뇌던 독백

현아는 2016년 우울증과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위해 꾸준히 약을 먹던 현아는 혈압이 갑자기 떨어져 의식을 잃는 미주신경성 실신까지 겪으면서 애초 지난해 준비했던 새 앨범 발매를 미뤘다. 2007년 원더걸스 원년 멤버로 데뷔, 포미닛을 거쳐 10여 년 넘게 무대에 선 현아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상태였다. 현아는 3년 전 같은 소속사 아이돌그룹 펜타곤 출신 던과 교제 사실을 밝힌 뒤 속앓이를 했다. 남녀 아이돌의 열애설이 터지면 대부분이 팀을 보호하는 쪽으로 전략이 짜이기 마련. '공식 연애'를 허하지 않는 전 소속사로부터 외면받으면서 그는 더 설 곳을 잃었다.

그런 현아는 지난달 28일 낸 새 앨범 '아임 낫 쿨' 수록곡 '쇼윈도'에서 "어김없이 울컥해 이럴 때마다 내일이 매일이 두려워져"라고 노래한다. 더불어 "날 더듬는 시선들 작게 말해줄래 너무 잘 들리거든"이라며 "이럴 땐 어떤 표정을 말해봐 잘 안다며 나를, 내 감정 어차피 가면 속에 살아가는 피에로"라고 씁쓸하게 읊조린다. K팝 산업이 원하는 무성애적 여성 아이돌의 틀을 깨 고난을 겪고, 때론 지탄을 받은 것에 대한 독기 어린 반발로 읽힌다.


현아는 본보에 '쇼윈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쇼윈도'는 굉장히 아픈 노래다. 날 밖에서 바라본 지인이자 작곡가(박해일 등)들이 날 보며 마음이 아팠는지 그 마음을 담아 이 곡을 선물했다. 내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외로움이나 그런 감정들이 담긴 곡이라 팬들도 이해할 거라 생각한다."

현아는 주저 앉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마주하라고 권유한다. 또 다른 수록곡 '굿 걸'에서 현아는 "나답게 구는 게 왜 나쁜 거야"라며 "주위 신경 쓰며 살지 마. 날 더 나답게 만들어"라고 당당하게 랩을 한다.

현아는 "무대에 서기 전 '나답게 구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야'라며 스스로 칭찬을 해주고 오르곤 했다"며 "'자유로운 새들처럼 날고 싶다' 등 평소 생각을 담아 가사를 썼다"고 창작 계기를 직접 들려줬다. 현아가 나다움을 강조하며 만든 새 앨범 타이틀곡 '아임 낫 쿨'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이날 기준 1,100만여 조회 수를 기록, 인기다.


양승준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