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코로나19로 집 안에 콕 갇혔나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단조롭고 답답한 집콕생활에 조금이나마 활기를 더해보는 건 어떨까요? 격주 수요일 ‘코로나 블루’를 떨칠 ‘슬기로운 집콕생활’을 소개합니다.
연신 ‘부어라 마셔라’를 외쳤던 퇴근길 치맥이나 폭탄주 회식은 이제 어렴풋한 추억이 돼 버렸다. 대신 취향대로 집에서 술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바야흐로 ‘홈술(Home+술) 전성시대’.
집에서 마신다고 편의점 맥주에 마른 안주 정도쯤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집에서도 강남의 바 못지 않은 화려한 안주에 다양한 술을 즐길 수 있다. 더군다나 클릭 한번이면 원하는 술과 안주가 집 앞까지 배달되는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집에서 술을 즐기는 무궁무진한 방법들이 공유된다.
홈술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업계에 따르면 식당(주점)용과 가정용 비율이 6대4였던 국내 주류 소비량이 지난해 코로나 확산 이후 역전돼 가정용 비율이 70%가까이 치솟았고, 지난해(1~11월) 와인수입량은 3만8,969톤으로 전년(2019년 3만3,797톤)대비 15% 증가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과거에 술맛을 느끼지 않고 마시는 사회적 소비가 컸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자신의 술 취향을 알아가고자 하는 취향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홈바에 직접 주조까지
서울에 혼자 사는 직장인 신준열(28)씨는 3개월 전 이사하면서 집에 ‘홈바’를 만들었다. 철제 책장에 다양한 술을 진열해두고, 아일랜드 식탁을 바 테이블로 활용했다. 신씨는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술을 좀 더 잘 즐기려고 바를 만들었다”며 “홈바가 있으니 집에서 마셔도 마치 바에 온 것처럼 격식을 차리게 된다”고 했다. 취미로 조주기능사 자격증까지 딴 그는 직접 마시고 싶은 칵테일을 만들어 마신다. 그는 “상쾌하면서도 달콤한 민트초코맛이 나는 술이나 보양이 되는 생강차 같은 술을 만들기도 한다”며 “내가 원하는 맛을 맞춰서 마실 수 있어 재미있다”고 말했다.
주부 김화진(43)씨는 집에서 레드와인에 다양한 향신료를 넣고 끓인 ‘뱅쇼’를 종종 마신다. 최근에는 SNS로 막걸리 만드는 법도 배웠다. 그는 “밖에서 술을 마실 때는 ‘어떤 사람이랑 마시느냐’가 중요했는데, 집에서 술을 마실 때는 ‘어떤 술을 마실까’에 대한 고민이 커지는 것 같다”며 “집에서 편하게 내 취향대로 마실 수 있어서 재미있다”고 했다.
홈술 수요가 늘어나면서 주종도 다양해졌다. 국내 최초 술 구독 서비스업체 ‘술담화’는 2,000여종의 우리 술을 선별해 한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배송해준다. 코로나 이후 가입자 수가 꾸준히 증가세다. 이재욱 ‘술담화’ 대표는 “맛집을 찾아다니듯 다양한 술을 경험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며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집 근처 유명 술집에서 파는 위스키와 맥주 등을 픽업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앱) ‘데일리샷’의 김민욱 대표도 “시중에서 쉽게 구하기 어려운 특별하고 희소성 있는 주류를 찾는 이들이 주로 사용한다”며 “집에서 마시더라도 취향에 맞게 맛있고 특별한 술을 마시려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호프집 ‘아코디언 감자’, 와인바의 ‘치즈 플래터’도 집에서
홈술의 성장에는 집밥의 공이 크다. 휴직 중인 조유미(36)씨의 ‘집밥’에는 술이 빠지지 않는다. 구운 스테이크를 중심으로 각종 야채를 곁들이고, 마지막으로 와인잔에 핑크빛 로제와인을 따른다. 문어숙회에는 차가운 화이트와인을 낸다. 조씨는 “코로나로 집밥을 먹을 일이 많아지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술을 곁들이게 됐다”라며 “예쁘게 잘 차려먹으면 아무래도 기분도 좋아지고, 술과 요리가 더 맛있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요리 실력이 대단치 않아도 호프집이나 와인바에서 나올 법한 안주를 집에서 근사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달콤한 멜론을 잘라 짭짤한 하몽을 얹기만 하면 되는 ‘하몽 멜론’, 새우와 마늘을 올리브유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새우 감바스’, 감자와 햄을 얇게 썰어 크림 소스를 끼얹고 오븐에 넣으면 5분만에 완성되는 ‘아코디언 감자’ 등 시선부터 강탈하는 안주들은 집에서도 초라하지 않게 술을 마실 수 있는 비장의 무기다. 최근 코로나에 친구들과 화상으로 술모임을 한 직장인 정진주(38)씨는 “다들 좋아하는 술과 안주를 보여주면서 모임을 시작했다”라며 “비용이나 장소에 상관없이 만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맞춤형 안주 배송 서비스도 인기다. 서울 잠실에서 와인바를 운영하던 구윤하 '안나스낵' 대표는 코로나로 바 운영이 어려워지자, 지난달부터 다양한 치즈를 소분한 ‘치즈 플래터’를 택배로 판매하고 있다. 판매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일 평균 판매건수가 200건이 넘었다. 의외로 30,40대 남성들의 주문량이 높다. 구 대표는 “와인뿐 아니라 사케나 소주에도 치즈 안주를 곁들이기도 한다”라며 “집에서 격식을 따지지 않고 편하고 자유롭게 술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얘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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