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유일한 부처인 여성가족부(여가부)가 올해 성년을 맞았다. 공정과 평등이라는 시대정신에 비추어 보면 국민 모두가 축하해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다른 것 같다. 여가부 무용론부터 심지어 폐지론까지 들린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피상적인 관찰에 따른 것일 뿐, 사정을 알고 보면 여가부로서는 억울할 것이다. 부처의 공식적인 영문표기가 ‘성평등(gender equality)’인 것처럼, 여가부는 여성만을 위한 부처가 아니라 성별에 의한 차별을 극복하라는 헌법적 명령을 수행하는 부처다. 설립 취지부터 업무 전반까지 역사적으로 고착화된 기울어진 운동장을 공정하게 바로잡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여가부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부족이 부당한 평가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언론도 간혹 여가부의 작은 실수를 침소봉대하여 여가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곤 했다.
일을 잘 못한다고 탓하기 전에 여가부의 업무 여건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공정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여가부 정책 수요자들의 기대 수준이 유례없이 높아졌다. 종래 포괄적이었던 업무가 이제는 양적·질적으로 복잡다단해지고 있다. 업무의 포괄성에 비하여 이른바 ‘미니 부처’인 여가부에 주어진 인력·예산·권한은 매우 제한적이다.
아동, 청소년, 가족, 성평등, 성폭력 업무 전반의 주무부처로 보이지만, 타 부처의 협력 없이는 제대로 일하기 어렵다. 이런 식의 불안정한 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여전히 한국의 성차별이 심각하다는 것은 각종 국제적 평가지표에서 뚜렷하다. 성차별은 저출산의 근본원인이며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따라서 여가부의 존재 이유와 업무 자체 보다, 어떻게 그 목표를 달성케 할 수 있느냐에 집중해야 한다.
성별에 의한 차별 금지와 존엄하고 평등한 가족생활을 보장하라는 헌법적 명령은 국가와 정부를 구속한다. 여가부의 업무는 정부 정책 전반을 ‘평등과 존엄’이라는 목표에 맞게 조율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여가부로 하여금 정부정책을 조율할 수 있도록 부총리급 기관으로 재편하는 것을 고려해봄 직하다. 또한 성차별 관련사건 발생 시 여가부에 해결기능은커녕 관여할 권한조차 미비하다는 점이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 참여정부시절의 남녀차별개선위원회와 같은 성차별구제기구를 재건하여, 신속하고 유효하게 시정할 수 있게 권한을 부여하면 정부도 불의의 시름을 덜 수 있다. 이는 성차별 피해를 당했을 때 막상 달려갈 만한 기관이 부족한 현실에서 피해자에게도 복음이 될 것이다.
여가부의 한계는 국가의 한계고, 미래 국민의 한계다. 여가부에 역량을 발휘할 여건을 만들어준다면, 여성의 미래만이 아니라 남성을 포함한 국민 모두의 공정한 미래를 앞당기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