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은 지 벌써 한 달이 돼간다. 얼마 있으면 구정이다. 새해 정초, 우리의 미풍양속으로 윷놀이만 한 것이 없다. 원래 윷놀이는 한바탕 풍장을 돈 다음 둥구나무 밑자락에 모여 아랫뜸 윗뜸 편 갈라 노는 마당윷이 원형이다. 이긴 편에 풍년이 든다고, 온 마을 사람들의 열띤 응원하에 승부를 겨뤘다.
집안에서도 설날 아침 온가족이 세배를 마치고 덕담을 나눈 다음, 편을 갈라 신나게 윷을 놀았다. 윷을 '논다'고 할 때는 놀이이지만, 윷을 '친다'고 할 때는 온 마을의 풍년과 행운을 점치는 의례가 된다. 한마디로 정초윷놀이는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낸 생(生)의 축제이자, 새해를 맞는 시절 의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윷놀이에는 또 하나의 용도가 있다. 그것은 윷을 세 번 쳐서 새해의 신수를 점쳐 보는 윷점이다. 도 도 걸을 치니 '어둔 밤중에 등불을 얻은'(暗得燈) 격이 나온다. 어둔 밤중에 등불이라니, 참으로 갈 길은 멀고 날은 추운데 등불 하나에 의지하며 밤길을 걷는단다. 고달프지만 그래도 작은 선물 꾸러미를 들고올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를 생각하며 힘을 내본다. 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소박하지만, 마음을 기울여보면 우리의 오랜 삶 속에서 터득한 지혜와 영감이 가득하다. 우리 인생이란 원래가 등불에 의지해서 조심조심 밤길을 걷는 격이 아닌가? 외제(外製) 점술이 판을 치는 세상이지만, 이보다 더좋은 점사가 있을 수 있을까? 이순신장군도 임진왜란의 위기에 바로 이 윷점을 치며 왜군을 물리쳤다고 하니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윷놀이는 바둑 장기 체스 트럼프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역사와 의미를 가진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이다. 미국의 저명한 인류학자 스튜어트 컬린이 일찍이 1895년에 쓴 '한국의 놀이'에서 윷놀이는 미주인디언 놀이의 조상일 뿐 아니라, 전 세계 보드게임의 원형이며, 심오한 철학과 우주관을 담은 놀이라고 칭송한 바 있다. 그러나 윷은 놀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나라 바위언덕에는 수만 년 전 신석기 시대로 추정되는 윷판암각화가 산재해 있다. 이 윷판암각화는 29, 30일을 주기로 하는 달의 변화와 위치가 정확하게 표현된 캘린더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윷놀이를 이미 무형문화재로 등록하고 자신들의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 등재를 꿈꾼다고도 한다. 필자의 윷 등재 촉구에 마이동풍으로 일관하던 당국자의 말을 되새겨보며, 자신의 문화도 아닌 것을 자기화하려고 노력하는 중국이 오히려 부럽다. 이렇게 중국에조차 뒤진 채 일본 화투와 미국 트럼프에 밀리고, 모바일게임에 밀리고 있다.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윷을 쳐본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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