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종합계획’ 논란에 부쳐
내 부모님은 아들 다섯을 뒀다. 이 중 형님 두 분이 교회 목사다. 형들은 내게 자주 조언한다. “동성애 조장은 절대 안 될 일이다. 학생인권조례를 동성애 조장 규정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주변에 많아서 걱정스럽다.”
나를 아끼셔서 하시는 말씀이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학생인권조례는 동성애를 권하는 내용이 결코 아닙니다. 차별하지 말라는 규정입니다.”
요즘 비슷한 대화를 여러 자리에서 반복하게 된다. 서울시교육청의 ‘학생인권종합계획’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일각에선 서울시교육청이 학생들에게 젠더 이데올로기를 강제로 주입하고, 동성애를 조장하며, 유치원생이 교장을 평가하게끔 하고, 만3세 아이에게 좌익 사상교육을 한다고 주장한다. 명백히 틀린 주장이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불과 얼마 전이다. 학교 성폭력을 고발하는 ‘스쿨미투’ 역시 생생한 현안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런 일이 또 생기지 않게끔 하려고 ‘학생인권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에 구애받지 않고 지도자를 뽑는 나라가 이미 흔하다. 앞으로는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동성애 혐오를 내면화한다면, 세계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피부색, 성적 지향 등의 차이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 태도를 익히는 교육은 글로벌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자라서 좋은 직장에 취업하길 바란다. 좋은 직장이란 그저 급여만 많이 주는 곳이 아닐 테다. 직원을 존중하는 곳이다. 실제로 취업 준비생들이 선호하는 직장이 대개 그렇다. 학부모들의 꿈이 이뤄지려면, 우리 사회에 좋은 직장이 많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직원을 존중하고 정당한 보상을 하는 직장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눈을 뜬 시민이 많아져야, 좋은 직장도 늘어난다. 직장 내 성추행이 줄어든 역사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성의 권리에 눈을 뜬 이들이 늘어나면서,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도 늘어났다. 노동인권에도 일찍 눈을 떠야 한다. 이는 먼 미래의 걱정거리가 아니다. 최근에도 우리 학생들이 일터에서 죽어간 사례가 있다.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산업재해에 대해 어른들은 보다 깊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학생인권종합계획’에 담긴 노동인권 교육은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다.
세상은 계속 변한다. 지금 아이들은 촌지와 체벌이 없는 학교를 당연하게 여긴다. 차이를 이유로 차별하고 혐오하는 태도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치리라 생각한다. 학생인권을 둘러싼 뜨거운 토론 속에서 혐오는 사랑으로, 차별은 존중으로 거듭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동성애 차별금지’를 ‘동성애 부추기기’로 인식하는 사회 문화 수준은 과감히 넘어서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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