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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서 불법 촬영물 수십장…대법 "무죄" 나오자 경찰 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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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휴대폰서 불법 촬영물 수십장…대법 "무죄" 나오자 경찰 고소

입력
2021.02.10 04:30
수정
2021.02.10 09:3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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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경찰의 '위법 수집 증거'
절차상 문제로 실체적 진실 살필 기회 잃어
담당 수사관 불법체포·공문서위조 고소당해
"사후 영장 등 일선 경찰의 인식 변화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하철에서 여성들을 불법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40대 교육 공무원이 경찰의 위법한 증거 수집으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대법원은 적법하게 수집된 증거가 아니란 이유로 불법촬영된 사진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 남성은 최근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신을 해임한 학교 측에 해당 처분을 무효로 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압수 전 절차 따르지 않아 증거능력 없어

9일 법원 등에 따르면 2019년 대법원은 서울 지하철에서 두 차례 20대 여성의 하반신을 촬영한 혐의(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로 재판에 넘겨진 A(44)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16년 1심에서 벌금형의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2심과 대법원에서 무죄로 판결이 뒤집어진 것이다. 휴대폰에서 여성의 신체를 촬영한 사진들이 수십 장 발견됐는데, 대법원이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법원 판결문과 한국일보 취재 등을 종합하면 A씨는 2016년 9월 서울 지하철에서 맞은편 남학생을 촬영하던 중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에 의해 현장에서 적발됐다. 경찰이 A씨를 임의동행해 압수한 휴대폰을 뒤져본 결과 남학생의 전신 사진과 관련해선 별다른 혐의점이 없었다.

그러나 A씨의 휴대폰 사진첩에서 그해 8월쯤 찍힌 지하철 여성 승객들의 하반신 사진이 수십 장 발견됐다. 경찰은 이를 증거로 삼아 별건으로 A씨를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고, 검찰도 A씨를 재판에 넘겼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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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심에선 경찰이 확보한 사진의 증거능력을 두고 검찰과 변호인간 공방이 오갔다. 변호인은 경찰이 남학생 촬영건으로 A씨를 임의동행해 휴대폰을 압수한 뒤 별건(8월 촬영물) 증거물을 압수했다며 증거수집 과정이 위법했다고 주장했다. 영장 없이 수집된 증거물이니, 증거능력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서명한 임의동행 동의서와 임의제출서에 의하면 피고인이 임의동행을 거부할 수 있었다"며 "언제든지 퇴거할 수 있음을 고지받았고, 휴대폰은 피고인이 경찰에게 임의로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진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하지만 2심 판단은 달랐다. 2018년 1월 2심 재판부는 "새로 인지한 범죄에 대한 증거수집은 적법 절차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면서 "현행범인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다른 범죄의 증거(2016년 8월 촬영물)를 확인했더라도, 정확한 설명이나 영장 없이 휴대폰을 임의제출 받아 압수수색한 것은 위법하다"며 무죄를 선고한 1심을 뒤집었다. 온전한 동의가 아닐 경우 사후에라도 영장을 발부받는 등 더 엄격한 절차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수십 장의 여성 사진들은 결국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다. 이후 대법원도 2심 판단을 받아들여 무죄 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수사기관 실수로 실체적 진실에 대한 법원의 판단도 받아보지 못한 데 대해 경찰은 자신들의 실책을 인정했다. 지하철경찰대 관계자는 "임의제출과 임의동행 동의서를 받았기 때문에 수사관들 입장에선 영장 발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라면서도 "앞으론 체포 과정에서 문제의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을 경우 사후 영장을 발부받는 방향으로 교육하겠다"고 말했다.

절차 위법했다면 판결엔 논쟁 여지 없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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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잘못이 밝혀진 만큼 대법원 판결은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무죄 판결에 힘입은 A씨가 자신이 다니던 직장을 상대로 해임처분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하면서 또다른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 공무원이던 A씨는 성범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실이 통보되면서 교편을 놓았다. 해당 학교는 2018년 2심 판결 직후 징계위원회를 열어 A씨를 해임했다. 징계위는 "여성 신체를 동의 없이 촬영한 것은 1심을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며 "법적 판단과 관계 없이 공무원으로서의 자격을 묻겠다"고 징계를 의결했다.

하지만 A씨는 "성범죄자로 낙인 찍혀 직장에서 쫓겨난 뒤 극단적 선택을 여러 차례 시도할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5년 동안 재판으로 망가진 인생을 보상받겠다"고 명예 회복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당시 지하철경찰대 담당 수사관 2명을 직권남용과 불법체포, 공문서위조 등 혐의로 고소했다.

불법체포 및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고소를 당한 경찰도 난감해하고 있다. A씨는 당시 경찰관들이 받았다는 동의서가 강압과 허위로 작성됐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경찰대 측은 이에 대해 "A씨의 일방적 주장이며 이후 재판에서 밝혀질 부분"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적법절차 원리가 수사 단계에서도 꼼꼼히 검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상희 한국여성변호사협회 사무차장은 "체포와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됐다면 무죄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다"면서 "절차상 문제로 실체적 정의를 따질 기회를 날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면기 경찰대 법학과 교수는 "번거롭더라도 수사기관이 절차를 꼼꼼히 따지는 게 결국엔 혐의를 더 정확히 가리고 인권 침해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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