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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교도소 같았죠" 일년 중 160일 감금 생활하는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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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교도소 같았죠" 일년 중 160일 감금 생활하는 공무원

입력
2021.02.11 04:3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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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 절반? '감금 생활' 이광열 인사혁신처 과장
CCTV·창문 봉인·쓰레기 자체 소각 등 철통 보안
내년 정년 앞둬 "힘들지만 우수인재 선발 보람"

지난 10일 인사혁신처에서 만난 이광열 시험출제과장이 공무원 시험 출제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제공

지난 10일 인사혁신처에서 만난 이광열 시험출제과장이 공무원 시험 출제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제공

365일 중 절반에 가까운 160여일을 ‘감금생활’하는 공무원이 있다. 음식물쓰레기조차 반출이 금지될 정도로 철통보안인 그곳, 경기 과천 소재 국가고시센터에 '또다시' 입소를 앞둔 이광열 인사혁신처 시험출제과장이 주인공이다. 그는 다음달 6일로 예정된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 문제 출제를 위해 설 연휴가 끝나면 짐을 싸야 한다. 내년 말 정년을 앞두고 공무원 생활 막바지를 불태우고 있는 그를 10일 인사혁신처에서 만났다.

초임 공무원 시절에도 시험출제과에서 근무했던 이 과장은 국가고시센터 첫인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교도소 같다고 생각했죠.” 그 정도로 국가고시센터의 보안은 삼엄하다. 창문은 봉인돼 있어 열 수 없고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는 입소와 동시에 압수당한다. 인터넷은 물론 전화 쓰는 것도 제한된다. 방을 제외한 곳곳에 폐쇄회로(CC)TV가 달려있고, 보안요원들이 1시간마다 순찰한다. 이 과장은 “밖으로 나가는 음식물쓰레기를 통해 문제가 유출될 수 있어 쓰레기도 자체 소각한다”고 말했다.

외부와 이어진 유일한 끈은 시험출제과와 연결된 ‘핫라인’이 전부다. 퇴소 전까진 상(喪)을 당하는 등 아주 부득이한 경우에만 외출이 허용되는데, 그마저도 혼자 나갈 수 없다. 그는 “시험출제과 직원 2명과 보안요원 2명이 2인 1조로 하루 종일 장례식장에서 외출자 곁을 지킨다”고 말했다. 상을 치른 뒤에는 다시 복귀해야 한다. 합숙기간(14~16일) 동안 사실상 외부와 단절되다 보니 시험출제위원으로 함께 들어온 대학 교수ㆍ공무원ㆍ연구원ㆍ교사 중에선 폐쇄공포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한 번 합숙할 때 출제위원과 보안요원, 간호ㆍ생활인력 등 200여명이 함께 생활을 한다.

그러나 정작 이 과장은 “문제출제부터 인쇄, 박스 포장까지 마쳐야 하는 합숙기간 동안 굉장히 바빠 갇혀 있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공무원 시험문제는 출제까지 여러 과정을 거친다. 우선 과목당 3~4명의 시험출제위원이 문제은행에서 시험문제를 뽑고, 국가고시센터에 있는 1만4,000권의 책을 활용해 문제에 이상이 없는지 검토한다. 이 과장은 “검색이 필요할 때는 컴퓨터 화면을 촬영하는 CCTV가 설치된 인터넷실에 시험출제위원이 보안요원과 함께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문제의 보기가 현행 법령과 맞는지 중의적인 표현은 없는지 확인하고, 검토위원이 문제를 풀면서 난이도를 살핀다. 검토위원은 전년도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합격자로 구성된다.

이렇게 다듬어진 시험문제는 마지막으로 시험출제과장의 손을 거친다. 그는 “합숙한 지 6~7일째까지 문제 출제를 마쳐야 한다”며 “문제가 나오기 시작하는 합숙 4일차부터는 3일 연속 밤을 새며 최종 확인해야 끝낼 수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후에도 철통보안은 계속된다. 인쇄한 시험문제를 봉투마다 나눠 넣고 박스 포장을 마칠 때까지 인쇄소 직원들조차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이 과장은 “힘들지만 공직사회 경쟁력을 높이는 우수인재 선발에 기여한다고 생각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민도 없지 않다. 그는 “직원들이 시험출제위원을 위촉하려고 하루 종일 전화를 붙들고 부탁해도 허탕 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감금생활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12년째 동결 중인 시험출제수당(일 30만원)도 위촉을 어렵게 하는 부분이다.

응시자가 급증하고 있는 공무원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가직ㆍ지방직 공무원 시험 출제를 총괄하는 이 과장은 “기본서를 충실히 보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항상 기본서를 중심으로 문제를 냅니다. 학원에서 나온 책은 보지도 않고, 참고자료로 삼지도 않아요.”


세종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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