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홈쇼핑 한류
편집자주
인도네시아 정부 공인 첫 자카르타 특파원과 함께 하는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 통일)'의 생생한 현장.
마스크를 낀 진행자가 진열대 앞에서 쉴새 없이 사문석 목걸이를 홍보한다. 카메라는 진행자 설명에 따라 목걸이를 클로즈업한다. 할인 가격과 사은품이 소개된다. 남편에게 목걸이를 선물 받은 여성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영상편지가 화면에 뜬다. 탁자 4개와 스티로폼 장식 벽, 카메라 몇 대가 방송을 위해 숨죽인 스튜디오는 소박하다.
인도네시아의 실시간 홈쇼핑 방송 현장은 어디서 본 듯 정겹다. 낯선 언어만 걷어내면 진행 방식이 마치 우리나라 홈쇼핑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다. 현지에는 없던 사업을 이식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게 한국이라 그렇다. 한국인이 설립했거나 한국 기업과 제휴한 업체들은 인도네시아 홈쇼핑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2001년 선보인 DRTV가 현지 홈쇼핑의 모태다. 30분간 물품 4, 5개를 광고하고 전화 주문을 받는 대신 오프라인 매장을 소개하는 식이었다. 2005년 12월 우리나라 현대홈쇼핑이 현지 업체와 제휴해 첫 홈쇼핑 방송을 내보냈다. 주문이 14개 들어왔다. 인도네시아 진출을 꿈꾸던 현대홈쇼핑은 지분 다툼 끝에 이듬해 철수했다.
회사는 떠났지만 사람은 남았다. 현대홈쇼핑 주재원이던 유국종씨가 2007년 레젤홈쇼핑을 설립해 2월 방송을 시작했다. 운동기구 30만개를 팔며 뿌리내렸다. 인도네시아의 첫 홈쇼핑 방송이자 현재도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어 인도네시아 홈쇼핑의 대명사로 불린다. 2009년 현지 대기업(엠텍그룹)도 홈쇼핑 사업에 진출했고, 2012년엔 우리나라 GS홈쇼핑과 제휴하는 대기업(MNC그룹)도 생겼다. 2013년에는 홈쇼핑 전체 매출이 전년대비 419% 급증하기도 했다. 2018년 기준 매출은 20억달러(2조2,330억원)로 추산됐다. 현재 1등인 한국업체를 비롯해 4곳 정도가 꾸준히 영업하고 있다.
초창기 현지에선 낯선 홈쇼핑을 각인시킨 제품이 2009년 소개된 한국산 양면 프라이팬이다. 2년도 안돼 100만개 넘게 팔렸다. 현재도 이름만 대면 현지 주부들은 제품명을 정확히 말하고, 어지간한 집엔 '짝퉁'이라도 하나씩 있을 만큼 '국민 프라이팬'이다. 모르면 간첩이다. 홈쇼핑 정품 가격이 가사도우미 한 달 벌이의 약 절반인 89만루피아(7만원)라 부의 상징으로도 통했다. 출시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인기 상품이다. 유사 제품도 많이 나왔다.
인도네시아 홈쇼핑은 주로 건강(운동기구, 홍삼), 주방(음식도구), 미용(화장품, 액세서리, 보석) 관련 상품들을 판다. 당일이나 익일 배송 체제라 대도시 위주로 영업한다. 카드 결제는 거의 없고 8할 이상이 대금교환인도(COD) 방식이다. 보다 간편한 전자상거래에 밀리고 있지만 중산층 이상 마니아들이 든든히 받치고 있다. 1인당 평균 매입액(객단가)은 110만루피아(8만8,000원)로 전자상거래(25만루피아)의 4배가 넘는다. 현재 인도네시아 홈쇼핑업체들은 대여 서비스, 중고 거래 등 판매 분야를 넓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접목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한국일보 인터뷰에 응한 인도네시아 소비자들은 재래시장이나 기존 매장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하고 혁신적인 제품을 홈쇼핑의 매력으로 꼽았다. 적절한 가격, 풍성한 사은품, 시간 절약, 명확한 상품 정보 역시 장점으로 거론됐다. 이들은 대도시에만 한정된 무료 배송 체제를 단점으로 여겼다. 시청 시간대는 제각각, 도드라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교사 에바(45)씨는 "상품을 홍보하는 방식이 관심을 유발하는데다 (구매에 걸리는) 시간까지 아낄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며 "홈쇼핑으로 구입한 양면 팬은 가족 모두가 애용할 정도로 다양한 요리를 만들 수 있어 실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대학 교수 디안(32)씨는 "전화로 주문하면 배송 일정에 맞춰 정확히 집으로 보내 주니 간편하다"고 했다. 블로거 메리다(39)씨는 "여러 홈쇼핑 채널을 즐겨보지만 구매는 품질이 우수하고 가격이 적당한 한국업체에서 한다"고 귀띔했다.
인도네시아의 도시 인구는 1억5,000만명 정도다. 이 중 구매력이 있는 홈쇼핑 잠재 고객은 5,000만명으로 우리나라 인구와 맞먹는다. 7개 업체가 경쟁을 벌이는 국내와 달리 인도네시아는 사실상 한국 업체의 텃밭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제품의 귀한 판로이기도 하다. 스튜디오와 방송실, 방송 내용이 겉보기엔 우리보다 촌스럽고 투박하지만 인도네시아 홈쇼핑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인도네시아인들은 알게 모르게 한국 홈쇼핑에 심취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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