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하나의 성(性)' 모델이 세상을 봤을 때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고전을 읽으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어떤 책은 2년만 지나도 시시하지만 어떤 책은 2,000년이 지나도 재밌다.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이야기 중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과 도저히 봐줄 수 없는 구태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전에는 주로 죽은 작가의 책을 읽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가장 활발히 활동한 동아리는 ‘고전연구회’. 그곳에는 어린 나이에 새치가 잔뜩 나고 문어체로 대화하는 스무 살이 들어왔다. 본 전공인 지구과학에서는 가능한 최신의 과학 이론을 배웠으나 복수 전공했던 철학에서는 플라톤·데카르트·칸트 등등을 읽었다. 내 글은 유럽 중산층 중년 백인 남성의 글을 닮아갔다. 코리안 걸 주제에!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은 대학 내에서 교수에게 성추행을 겪은 뒤였다.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교묘하며 혼란스러웠고 내게는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었다. 자칫하면 불명예한 소문을 퍼뜨리는 학생이 될 것이었다. 평소대로 책에서 답을 구하려고 했다.
나이 많은 남자와의 관계, 문학에선 로맨스란다
여자와의 관계를 묻자 책 속의 선생들은 시궁창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나보코프의 '롤리타'. 중년의 문학 교수 험버트는 12살 소녀 돌로레스를 만지기 위해 그녀의 엄마와 결혼하고 훗날 돌로레스의 딸도 성노예로 삼는 상상을 한다. 탈락.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아내는 문학적 감성을 교류할 수 없는 악처로 나오고, 외로운 문학 교수 스토너는 자기 제자와 사랑에 빠진다. 탈락. 톨스토이. 13명의 자녀를 두고 사유재산을 부정, 아내를 역사적 악처로 만든다. 탈락.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제목부터 탈락.
책 속에 등장하는 나이 많은 남자 어른과 어린 여자의 관계는 나의 경험을 잘 설명해주지 못했다. 내가 느낀 건 모멸감인데 책들은 로맨스라고 했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이 달랐다. 점차 나의 경험을 더 신뢰했다. 책의 권위를 최초로 의심하게 된 순간이다. 이후부터는 아무리 권위가 있는 말일지라도 발화자의 위치가 어디인지 반드시 확인한다.
그래도 과학은 좀 다를까
고전의 환상을 좀 더 깨보려 한다. 과학사는 철학을 배울 때 알지 못했던 고대철학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고대에는 철학과 과학의 경계가 불분명했다. 흔히 과학의 첫 시작을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에 둔다(왜 하필 시작이 또 유럽 백인 남성일까? 과학의 역사는 중국이나 아랍을 중심으로 다시 쓰일 수 있다).
어쨌든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실험이 아니라 사유를 통해서 자연의 변화무쌍한 여러 현상을 이해하려 애썼다. 플라톤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마찬가지로 몸을 탐구했다.
플라톤은 현실 세계를 이데아의 불완전한 복제품으로 보았다. 이데아는 영원불변하고 완전한 세계, 기하학적 조화원리가 지배하는 세계로 모든 것의 원인이자 본질이다. 사물의 본질이 현실 세계가 아니라 이데아에 있기에 플라톤은 감각 경험보다는 이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찰의 중요성을 좀 더 아는 자였다. 그는 사물의 본질이 실재 속에 내재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관찰을 통해 만물을 분류하고, 만물에 내재한 고유한 속성을 확인함으로써 자연 전체의 작동질서를 짜 맞출 수 있다고 보았다.
달랐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여자 보는 눈은 같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은 서양 세계에서 자연에 관한 정통 학설로 2000년 동안 군림했다. 그의 자연철학이 꽤 많은 자연현상에 상식적이면서도 탁월한 설명을 제공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고대 철학자라는 권위 덕이기도 했다. 또 그의 자연철학은 대단히 체계적이고 통일성 있어 하나의 변칙 사례로 전체 이론을 수정하기에는 너무 많은 걸 들어내야 했다.
스승과 제자가 이토록 다른 자연철학을 펼쳤으나 만물의 조화와 질서를 강조하는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점은 같았다. 만물의 질서. 그 안에는 여성과 남성의 위계도 포함된다.
이들은 여성이 남성의 불완전한 버전이라고 보았다. 곧 여성과 남성은 질적으로는 같지만 위계에서 차이가 난다. 왜?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보다 ‘열기’의 정도가 낮기 때문이다.
차갑고 축축해서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하단다
그의 물질론에서는 지상계의 원소가 무거운 순서로 흙, 물, 공기, 불 네 가지다. 이들은 무게에 따라 본연의 위치를 향해 운동한다. 흙이 물보다 무거우니, 호수에 던진 돌멩이는 가라앉는다. 물이 공기보다 무거우니 공기 방울은 수면 위로 떠 오른다. 공기는 불보다 무거우니, 불은 위로 타오른다.
4원소는 각각 고유한 특성을 가진다. 불은 뜨겁고 건조하며, 공기는 축축하고 뜨겁고, 물은 차갑고 습하며, 흙은 차갑고 건조하다. 꽤 그럴싸하지 않은가? 4원소 사이에도 위계가 있는데 열기는 이 중에서도 특별한, 생명을 담은 불멸의 물질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열기가 부족해 차갑고 축축하기에 열등하다.
여자는 그저 남성에 못 미치는 존재다
미국 UC버클리의 역사학과 교수 토마스 라커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한 가지 성(sex) 모델이라고 이름 붙였다. 한 가지 성 모델이란, 남성이라는 기준 성만이 존재하고 이에 미치지 못하는 불완전한 버전이 여성이라는 모델이다.
한 가지 성 모델에서는 몸 안의 여러 가지 체액이 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피의 연속적인 스펙트럼 안에 있다. 혈액, 정액, 젖, 월경혈 등에서 여성만의 체액은 없고 남녀 체액의 분명한 경계도 없다. 그런 점에서 남성의 정액과 여성의 월경혈은 같은 종류다. 다만 더 상위의 형태가 열기를 더 많이 포함한 정액이다.
임신도 비슷하게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액을 통해 운반되는 ‘스페르마’가 핵심적인 본질을 부여하여 태아를 만든다고 보았다. 스페르마는 마치 순식간에 작품을 완성하는 장인처럼 기능한다. 목수가 나무 책상에 흡수되지 않듯, 그 과정에서 생명을 담은 스페르마는 질에서 없어지거나 증발한다. 곧 정액 안에 인간의 본질이 있고 여성은 오직 재료를 제공할 뿐이다.
질은 여성 몸 속 음경 ... 자궁엔 이름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이어받은 고대 로마의 해부학자 갈레노스는 히포크라테스 이래 최고의 의학자로 꼽히며 고대 의학의 완성자로 알려졌다. 2세기 갈레노스는 여성과 남성은 근본적으로 같지만, 생명의 열기 혹은 완전성의 결핍 때문에 남성에게는 눈에 보이는 구조가 여성에게는 내부에 갇혔다고 보았다.
그에게 질은 내부에 있는 음경이고, 음순은 음경의 포피, 자궁은 음낭, 난소는 고환이었다. 난소는 오랫동안 여성의 고환이라고 불렸으며 19세기가 될 때까지 2천년 동안 이름이 없었다. 자궁 역시 마찬가지다.
“음경은 자궁의 목과 질이 되고 포피는 여성의 외음부가 되며 여러 관과 혈관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해부학적 대칭은 그 반대의 경우에도 해당되는데 여자를 가지고 남자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토마스 W. 라쿼, Making Sex: Body and Gender From the Greeks to Freud. 1990)
갈레노스는 남성 성기의 모든 부분이 위치만 바뀌면 여성 성기가 된다고 보았다. 여성은 남성의 성기를 안으로 뒤집어 놓은 것이고 그래서 불완전한 남성이다. 여성은 남성과 똑같은 기관을 가지지만 열기가 부족해 부적절한 곳에 있다. 여성의 생식기는 “두더지의 눈”처럼 발달하지 못한 상태다. 인체에서 가장 고귀한 부분은 머리나 심장이 아니라 피를 덥히는 고환이다. 인간은 가장 완전한 동물이고, 남자는 여자보다 더 완전하다.
무엇을 어떻게 말하건 기준은 오직 남성
한 가지 성 모델은 17, 18세기에 남녀를 질적으로 다르게 보는 두 가지 성 모델이 등장하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서구 세계를 지배했다. 두 가지 성 모델이라고 해서 더 평등한 관점은 아니었다. 다른 방식으로 차별을 정당화했다. 한 가지 성 모델이든 두 가지 성 모델이든 남성이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남녀를 같게 보든, 다르게 보든 여전히 차별일 수 있다는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갈레노스가 생전 해부를 경험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해부까지 했는데 어째서? 당시 그가 동물만을 해부하고, 인체를 해부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일까? 그러나 한 가지 성 모델은 2세기 갈레노스를 지나 16세기 병원과 대학에서 인체 해부가 매우 흔해진 시기에도 공고했다. 해부학자들은 손에 피를 묻혀 가며 직접 만지고 관찰하면서도 여성의 성기가 남성의 성기를 뒤집어 넣은 모습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자 기대했던 것만을 본다.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자신이 읽고자 기대했던 것만을 간직할 것이다. 그러니 늘 되돌아봐야 한다. 나는 사회의 어느 위치에 있고, 지금 내게 매력적으로 들리는 주장은 누구에게서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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