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1920년대 버마(미얀마)에서 제국주의 경찰로 복무하며 20대를 보냈다. 당시 버마를 통치한 영국의 눈으로 버마인들을 지켜본 그는 이때의 경험을 끄집어내 장편 '버마 시절'을 탈고했다.
영국이라는 제국의 공권력, 이들에 기생해 권력을 누리려는 버마인 관료, 그리고 분전과 복종 사이 무엇도 결정하지 못한 채 시들었던 민초. '버마 시절'의 장면들은 동시대 일제 치하에서 펼쳐진 우리의 슬픈 역사와 놀라울 정도로 판박이다. 친영(親英) 하급관리가 영국인의 눈에 들기 위해 버마어와 영어가 혼용된 괴상한 언어를 중얼거리고, 버마인을 '흑인'이라 칭하고 영국인을 '은인'이라 부르며 굽실대는 언론이 그랬다.
미얀마의 현대사는 오웰의 소설 속 풍경 외에도 우리와 닮은 구석이 많다. 먼저 지정학적 위치가 그렇다. 벵골만 건너 서쪽으로는 인도와 이를 배후에서 지탱해온 영국. 북동쪽으로는 중국의 그림자가 두텁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모양새가 꼭 닮았다. 그런 이유로 외세의 침략을 수도 없이 당한 것도 흡사하다. 1885년 영국령으로 편입된 후 제국주의에 짓밟히기 시작한 미얀마의 현대는 1942년부터는 일본과 태국의 지배하에 놓였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싹틀만 하면 군홧발이 여지없이 짓이긴 상처도 마찬가지로 아팠다. 결과는 크게 달랐지만 우리는 87항쟁을, 미얀마인들은 88항쟁을 겪었다.
이러한 미얀마에서 현대사회의 장면이라 믿어지지 않는 쿠데타와 목숨을 건 민중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25년 군정의 마침표를 찍고 2015년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세력이 집권한지 5년을 겨우 넘겼을 뿐인데,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다시 군홧발 아래 놓였다. 수치 여사가 자연재해관리법 위반이라는 괴상한 죄목으로 재판정에 서고, 군정이 시작되자 국민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총과 맞설 수 없는 이들은 지금 어둠이 내리면 냄비를 두드린다. 미얀마에서 밤의 소음은 악귀와 싸우는 유일한 무기로 여겨진다.
청와대는 미얀마 쿠데타 발발 보름이 훌쩍 지나고 현지에서 실탄 피격 소식이 들리던 즈음인 18일 "미얀마의 헌정질서가 평화적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협력한다"고 밝혔다. 주요국들이 쿠데타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낸 것과 비교해 소극적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때 외교부는 군부집권을 방관하는 듯한 입장을 드러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대한항공 858기로 추정되는 동체 조사를 위한 수색단 파견을 미얀마 군사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미얀마 사태 발발 초기부터 군사정부의 성립 자체를 규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중국 '눈치보기'를 꼽는 이들이 많다. 군부의 오랜 뒷배인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도록 적절히 수위를 조절한다는 것이다.
현지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지금도 SNS와 인터뷰를 통해 끊임없이 한국정부와 시민에게 미얀마 민주주의 지지와 도움을 촉구하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은 한국이 더이상 외세를 신경쓰지 말고 나서달라는 외침이다. 정부는 40년전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이 광주를 지켜보며 했던 '인권보다 안보가 우선'이라는 내용의 인터뷰가 우리 국민에 어떤 생채기를 냈는지 떠올리길 바란다. 그리고 미얀마 국민이 밤마다 내는 냄비 두드리는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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