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 대권 주자 크루즈 상원의원 한파 속 휴가 논란
지역구 텍사스 겨울폭풍 피해 속 자녀와 멕시코행
'트럼프 이후 잘못에 관대해진 美 정치문화' 시험대
공화당 내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의 휴가 스캔들이 미국의 정치문화를 시험대에 올렸다. 지역구인 텍사스주(州)에 최악의 겨울폭풍 재난이 닥친 와중에 따뜻한 멕시코 칸쿤으로 가족여행을 떠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최대 정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아직 선거까지는 4년 가까이 남았다. 스캔들에 휩싸였던 미국 정치인들이 다음 선거에서 이긴 전례도 다수다. 미 AP통신은 “크루즈의 여행이 스캔들의 지속성과 유권자들의 기억력을 시험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15일(현지시간)부터 겨울폭풍이 몰아쳤던 텍사스주에선 한때 450만 가구가 정전됐다. 이 사이 60세 노인이 난방이 끊긴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고, 11세 아이가 이동식 주택에서 잠을 자다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는 등 인명 피해가 속출했다. 전기는 돌아왔지만 수도관 동파 등으로 20일에도 1,000만명 이상이 수돗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텍사스주를 중대재난지역으로 승인, 연방정부 예산으로 피해 복구에 나섰을 정도다.
이런 난리통에 크루즈 의원이 17일 칸쿤행 비행기에 탄 사진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18일 급거 귀국한 크루즈 의원은 추위에 떨고 있는 딸들을 위한 행동이었다고 변명하면서도 ‘실수’라고 사과했다. 그러나 여기에 반려견 푸들을 두고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이 19일 추가로 공개되는 등 논란은 확산일로다.
크루즈 의원은 2013년 43세의 나이로 상원에 입성한 뒤 공화당 간판급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2016년 대선 경선 초반 아이오와코커스에서 1위를 차지하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위협하기도 했다. 이후 친(親)트럼프 정치인으로 변신해 대선 결과 불복, 탄핵 저지에 앞장섰다. 2024년 대선과 상원의원 재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중이다.
이번 스캔들로 미국은 물론 세계 전역에 ‘무책임한 정치인’ 이미지를 남겼지만 그의 정치 경력을 무너뜨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각종 막말과 혐오 표현으로 2016년 대선 내내 문제가 됐지만 결국 당선됐다. 릭 샌포드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가 애팔래치아 하이킹을 갔다고 거짓말하면서 혼외정사 여행을 떠났던 일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지만 결국 다시 하원의원으로 재기했던 일도 있다.
크루즈의 대선운동을 지원했던 앨리스 스튜어트는 “트럼프 시대와 그 이후 사람들은 조금 더 (스캔들에) 관용을 보이게 됐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종종 정치 스캔들을 심화시키지만 SNS는 지속력이 짧은 경향이 있다”라고 AP에 밝혔다. 크루즈 의원의 정적들이 계속해서 칸쿤 여행을 떠들어대더라도 아직 선거까지는 시간이 많고 투표 때가 되면 다 잊혀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텍사스는 공화당의 텃밭이다. 이곳 유권자들은 과연 2024년 11월 선거에서 어떤 투표를 할까. 자신들이 추위와 고통에 떠는데도 휴가를 간 전력을 까마득하게 잊은 채 뽑아줄까, 아니면 그때까지도 분노를 식히지 않고 표로 응징할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