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 범죄 저질러도 의사면허는 그대로?
변호사·회계사·법무사 기준 적용해 법 개정
의협 "의사는 변호사와 다르다...총파업 불사"?
의료계 내부에서도 파업 남발 우려 목소리?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특권의식 비판
의사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으면 면허를 박탈할 수 있는 법률 개정안이 2월 임시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정부와 의료계가 또 한번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질 조짐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의사에 대한 과도한 규제라고 강력 반발하며 총파업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라도 면허는 유지해야 한다는 의협의 주장은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특권의식의 발로라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코로나19 백신 접종까지 '볼모' 삼아 강경 대응에 나설 경우 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강력범죄로 실형 받은 의사, 면허 취소 5년
21일 국회에 따르면 지난 19일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의 핵심은 범죄의 종류와 관계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기존에는 허위진단서 작성 등 형법상 직무 관련 규정이나 의료 관련 법령 위반으로 금고형 이상을 받을 때만 의사면허 취소가 가능했다. 이 때문에 수면내시경을 받는 환자를 전신마취 후 성폭행한 의사가 집행유예를 받고 개원을 해도 막을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면허 취소 기간도 늘어난다. 금고 이상 실형을 받은 의사는 5년 간 면허가 취소된다. 형을 처분받은 후 추가로 5년 간 면허 재교부가 금지되는 것이다. 금고 이상 형의 집행유예는 2년 간, 선고유예는 유예기간만큼 면허가 취소된다. 기존에는 의료법을 위반해 금고 이상 형을 받으면 3년 간 면허가 취소됐다.
이번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이르면 다음주 중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의사면허 취소 기준이 20년 만에 바뀌게 된다.
의협 "총파업 불사... 자율징계권 달라"
의협은 강력 반발했다. 전날 전국 16개 시·도의사회 회장이 모여 개정안을 '면허강탈 법안'이라 규정하며 "법사위를 통과하면 전국 의사 총파업 등 전면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이날 서울 중구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열린 '코로나19 백신접종 의정공동위원회 2차회의'에 참석해 "법안이 법사위에서 의결된다면 코로나19 진료와 백신 접종 관련된 협력 체계가 모두 무너질 것"이라며 정부를 압박했다.
의협은 직무와 무관한 범죄까지 면허 박탈 사유로 허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반하는 과잉 규제라고 주장한다. 교통사고를 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아도 면허가 취소되는 건 부당하다는 것이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응급실에서 취객과 실랑이에 휘말려 쌍방과실로 인정돼 집행유예를 받는 경우에도 면허가 박탈될 수 있다"며 "현장에서 의사들을 협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최 회장은 이날 “의사 면허에 대한 건 (의협에) 자율적인 징계권을 주면 엄격하게 관리할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KBS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최근 약 5년 간 금고 이상 형을 받은 의료인들은 30명 안팎에 불과하다"며 "중범죄를 저지른 극소수 의료인들을 처벌해 다수 의료진과 국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더구나 다른 전문직군은 이미 유사한 면허 취소 기준을 적용받고 있다. 이번 개정안에 포함된 면허 취소 기간 '실형 5년·집유 2년'은 변호사·회계사·법무사·국가공무원에 적용되는 기준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세무사는 '실형 3년·집유 1년', 변리사는 '실형 3년'이다.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만 면허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오히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세균 "불법 집단행동, 강력한 행정력 발동할 것"
정치권에선 임시국회 통과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분위기다. 의료계의 잇단 집단행동에 대한 반대 여론이 큰 데다 개정안에 대한 국민 공감대가 높다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의 복지위 소속 의원은 "대다수 국민들이 코로나19 종식을 염원하는 상황에서 의협이 백신 접종을 보이콧하겠다고 한 것은 강한 역풍을 불러오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이날 페이스북에 "의협이 불법 집단행동을 현실화하면 정부는 망설이지 않고 강력한 행정력을 발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계 내에서도 의협의 대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의협이 대안을 제시하거나 국민을 설득하려는 노력은 제대로 하지 않고 파업이라는 최후 수단을 남발하고 있다"며 "국민들 입장에선 코로나 상황을 볼모로 특권을 지키려는 것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도 "협회가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의사라는 직업 특성에 따라 예외로 할 만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합리적 해법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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