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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미국 사회가 한 보수 논객의 죽음을 놓고 다양한 평가를 내놓고 있다. 주인공은 조금은 생경한 러시 림보. 한 세대에 걸쳐 미 보수층을 열광시킨 인물이다. 좌파와의 30년 싸움의 증인이란 평가도 나온다. 그가 지난 주 향년 70세로 타계하자 플로리다주는 장례식에 맞춰 조기를 게양하겠다고 발표했다. 1988년부터 그가 진행한 라디오 뉴스쇼는 하루 3시간 동안 전국 600여 라디오 방송사 전파를 탔고, 일주일에 1500만명이 귀 기울였다.
□ 림보는 라디오 프로를 기성체제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를 대리 표출하는 유력한 수단으로 만들었다. 백인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속내를 대신 토해내는 림보에 흥분했다. 그러나 림보는 갈수록 편향된 극단적 주장을 걸러내기 보단 그 확성기가 됐다. 그에게 코로나19는 감기에 불과한 음모였고, 경제 불평등을 우려한 교황은 공산주의자였으며, 오바마는 미국인이 아닌 외국인이었다. 림보가 우파 최고이자 최후 전사로 활약한 대가는 확실했다. 한때 한 해에 6,600만달러를 벌어들였을 정도다.
□ 보수층 영향력에서도 종종 1위로 조사될 만큼 림보의 위상은 커졌다. 자신이 원할 때 뉴스를 만들고, 법안을 폐기시킬 수 있다는 말까지 따라 붙었다. 하지만 좌파 입장에서 림보는 미국을 병들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넘쳐나는 추종자들을 정체성 정치로 이끈 선동가이기도 했다. 실제 그의 확신에 찬 거짓말,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의 결과는 인종주의, 외국인 혐오, 반페미니즘으로 연결됐다. 트럼프 같은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등장 배경에도, 극우 세력의 의회 난입에도 림보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 무엇보다 우려되는 림보의 유산은 극단주의다. 그의 부음이 이를 약화시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미 공화당은 그 청산을 놓고 내전 중이지만, 자정기능이 강화된 증거는 찾기 힘들다. 보수가 극단주의를 수용했을 때 나치가 출현했던 것처럼 미국 정치를 흔들 민주주의 위기의 징후는 당장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다만, 림보가 자신의 죽음으로 틀렸음을 증명한 유산은 하나 있다. 그는 수십 년 시가를 즐기며 흡연의 위험성을 부인했는데 결국 폐암으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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