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아가씨 유정도 하지'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매주 한 편씩,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매일같이 사그라지는 젊음을 떠올리다 겁이 날 때면 유튜브에서 ‘박막례 할머니’와 ‘밀라논나’의 동영상을 본다. 반듯한 허리, 세련된 차림의 밀라논나는 70세고, 최신 문화에 밝고 온갖 도전에 열려있는 박막례 할머니는 73세다. 두 분은 영상에서 스스로를 ‘할머니’라 칭하지만, 어쩐지 그 호칭이 이들에게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느낀다. 단순히 ‘부모의 어머니를 이르는 말’이라는 사전적 의미 이상의 기대 혹은 편견이 할머니라는 호칭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단일화된 서사를 부여 받은 존재다. 김치는 무조건 잘 담가야 하고 손주는 무조건 그리워해야 하는, 희생이 정체성이고 헌신이 곧 자아인 존재. 하지만, 나이든 여성은 꼭 ‘그런 할머니’여야만 할까? 악스트 1/2월호에 실린 은희경의 단편소설 ‘아가씨 유정도 하지’에 나오는 ‘82세 최유정’은 “내가 할머니지만, 그 사람들이 아는 그 할머니는 아니야”라고 말하는 인물이다.
물론 유정이 겪어온 삶 역시 전형적인 우리네 할머니의 그것이다. 야반도주한 남편을 대신해 세 자식을 건사했고, 친정의 맏이로서 다섯 동생을 챙겼다. 수많은 관혼상제를 치르고 세 번에 걸친 딸과 며느리의 출산을 수발했다. 동시에, 유정은 김치나 장을 담그는 데는 소질이 없었고 서양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아들의 국민학교 입학 가방을 살 돈으로 자신의 수영복을 사 입기도 한다. "희생과 자애"를 덕목으로 삼지 않고 자기애가 강한 유정은 자식들에게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어머니”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유정은 다만 어머니라는, 할머니라는 한가지 정체성에 자기를 가둬두지 않았을 뿐이다.
“어머니는 그 말을 싫어했다. 현모양처, 알뜰한 당신, 어머니 손맛 같은 말도 마찬가지였다. 여자와 노인이 합해진 의미에서의 할머니로만 대해지는 것 역시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희생과 헌신, 고향의 이미지, 경제적 무능, 부지런함과 절약, 쇠약함과 퇴행, 그리고 자애라거나 지혜로움 같은 미덕까지. 어머니는 힘들게 살아온 것은 인정을 하되 누구에게도 그것을 동정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유정은 재즈와 올드팝에 맞춰 춤추던 아가씨였고, “곤궁한 생활 속에서 자식들과 씨름하며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하고 사는 나날이 지겨워서 다 팽개치고 도망이라도 가고 싶다”는 편지를 쓰던 사십 대의 여자였다. 소설은 최유정이라는 인물과 그의 삶을 통해 '할머니'라는 단어가 얼마나 납작한지, 얼마나 많은 서사를 생략하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만든다.
여담이지만 은희경 소설가는 매번 만날 때마다 “그 옷 어디서 사셨어요?”라고 묻고 싶게끔 만드는 패션 센스의 소유자다. 무릎 위로 깜찍하게 올라온 미니스커트, 스트라이프 니트, 찢어진 청바지, 독특한 무늬의 양말은, 모두 62세의 그에게 정말로 ‘잘’ 어울렸고, 30대인 나에게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얼마 전 손주가 태어나 은희경 작가는 진짜 ‘할머니’가 됐다. 그러니까 정말, ‘할머니다운’ 게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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