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2시, '총파업 결의' 수백만 전국 거리로?
장갑차를 경찰차로 위장한 군, 무원칙 체포 남발
강화된 국제사회 압박에도 "목숨 잃을 길" 협박만
미얀마는 겁먹지 않았다. 최소 4명의 목숨을 앗아간 군부의 총탄 앞에 '2'자 다섯 개를 앞세운 수백만 총궐기로 맞섰다. 민주화의 상징인 1988년 '88항쟁' 이후 최대 규모 시위다. 장갑차를 경찰차로 둔갑시킨 군부는 유혈 진압 빌미만 노리고 있다. 탄압 속 저항이 증폭되는 미얀마는 지금 봄을 갈망하고 있다.
22일 외신과 현지 매체를 종합하면 이날 오후 전국 15개 이상 도시에서 1일 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동시다발 반대 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은 2021년 2월 22일에 착안해 '22222혁명(또는 총파업)'이라 명명했다. 88항쟁 성지이자 인구 550만명인 최대 도시 양곤을 시작으로 수도 네피도, 제2도시 만달레이가 선봉에 섰다. 20만 인구의 남부 소도시 바고도 동참했다. 주요 도시 도심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대기는 함성으로 뒤덮였다.
오후 2시가 되자 미얀마 전체가 흔들렸다. "군부는 물러나라"(양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만달레이)는 외침이 메아리처럼 다른 지역으로 흘러갔다. 몇몇 도시에선 민주화를 염원하는 글이 자유를 갈망하듯 빨간 풍선에 달려 하늘로 날아갔다. 동남아 최대 승차공유업체 그랩과 미얀마 최대 유통업체 시티마트도 이날 일제히 총파업에 동참했다.
양곤 현지 대학생 A(24)씨는 한국일보에 "전날 미얀마 총파업위원회가 혁명을 공표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지역별 시위 장소가 폭넓게 공지됐다"며 "주요도로가 봉쇄됐지만 시민들이 샛길로 돌아나와 계속해서 합류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SNS로 생중계된 시위 현장 영상을 보면 오후 4시쯤 모인 시위대는 2시간 전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
군부는 위장 및 기습 작전으로 시민들을 기만했다. 이날 오전 중무장 장갑차를 하얀색 경찰차로 위장해 각 도시로 일시에 보내는가 하면, 만달레이 등지에선 군인들이 경찰복으로 갈아입고 진압을 준비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군경은 이날 점심 네피도의 프인 마나 거리에서 아무런 저항 없이 길을 걷던 일반 시민 150여명을 붙잡아 트럭에 싣기도 했다.
동남아 외교 소식통들은 "군이 통행금지령 발동 시점인 오후 8시 전후 무력 진압이나 대규모 체포 작전에 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다행히 시민들은 8시 이후 군병력을 피해 자진 해산하거나 강가에서 희생자를 기리는 촛불 집회만 소규모로 열었다. 적어도 혁명 첫날 저녁부터 무력 진압의 빌미는 주지 않은 셈이다.
국제 사회는 22222혁명 깃발에 호응하며 미얀마 군부를 거세게 압박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SNS를 통해 "시민들에게 폭력을 자행하는 이들에겐 계속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 외무장관들은 이날 미얀마에 대한 관세 특혜를 폐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미얀마 군부는 외교부 성명을 통해 "(미국 등의 압박이) 명백한 내정 간섭"이라고 일갈했다. 국민들에겐 "시위대가 청년들의 생명을 앗아갈 대결의 길로 가고 있다"고 전날 무력 진압을 예고한 뒤 이날 내내 침묵했다. 서슬 퍼런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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