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기가 막힌 법안은 처음 본다." "아무리 급해도 이런 졸속 법을..." "이건 국회 위신의 문제다."
여야의 합심으로 ‘부산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안’이 지난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여야 지도부의 '지령'을 받은 국토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법안을 일사천리로 처리했지만, 문 닫힌 비공개 회의장에선 이처럼 자괴감을 토로하며 '양심 고백'을 한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특별법안을 논의한 17, 19일 국토위 소위와 전체회의 회의록을 한국일보가 입수해 분석한 결과다.
“어떻게 이런 법이…” 국토위 소위, 탄식에 탄식
가덕도 특별법안이 처음 논의된 이달 17일 국토위 소위. 소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탄식을 쏟아냈다. 지난해 11월 여야가 “2030년 부산 월드엑스포 전에 가덕도 신공항을 개항하겠다”며 발의한 특별법안의 핵심은 각종 사전 절차의 면제다. 공항은 ①입지ㆍ사업비 등 밑그림을 확정하고(사전 타당성 조사) ②이에 대한 경제성과 균형발전 효과 등을 따지고(예비 타당성 조사) ③기본ㆍ실시설계 등의 과정을 거쳐 착공된다. 특별법은 이 같은 절차를 건너 뛸 수 있게 하는 패키지 특례 조항이 포함됐다. 문자 그대로 '특별한' 법인 셈이다.
'양심 고백'의 포문은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열었다. 회의 속기록에 따르면, 그는 사전 타당성 조사 면제 조항에 대해 “이 법이 통과돼도 공항을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길이는 어떻게 (지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조사를) 면제하면 뭘 만든다는 거냐”고 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특별법을 "올마이티(almightyㆍ전지전능한) 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설계 前 착공? “동네 하천도 그렇게 안 한다”
실시설계 특례 조항도 난타당했다. 조응천 의원은 “실시설계가 나오기 전에 일단 공사부터 한다? 우리 동네 하천 정비할 때도 그렇게 안 한다”고 직격했다. 하영제 국민의힘 의원은 “아무리 급해도 이런 졸속한 법이 나왔느냐"며 "참 우리(국회의원들) 위신상의 문제”라고 성토했다.
소위에 참석한 손명수 국토부 제2차관도 거들었다. 그는 “설계 없이 어떻게 공사를 하느냐”며 “설계ㆍ시공의 병행을 염두에 둔다 해도, 그건 기술적인 사업 추진 과정의 문제라 법에서 (특례를 두는 건) 모순”이라고 했다. 이날 소위에 참석한 의원 9명(민주당 5명+국민의힘 4명) 중 이런 분위기와 다른 목소리를 낸 의원은 없었다.
의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심전심'이었다. 조 의원은 예타 조사 면제 조항을 논의하다 불쑥 “지금 말은 이리하고 있지마는 (저의) 속은 다 썩었다”고 토로했다. 이에 송언석 의원이 “어떻게 제 말씀을 하시느냐”고 맞장구를 치자, 의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고 회의록에 적혀 있다.
여야 지도부는 '가덕도 특별법의 2월 임시국회 처리'를 공언했지만, 소위 소속 의원들 생각은 달랐다. 17일 소위에선 예타 면제 등 특례 조항을 모두 삭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지도부 압박에 결국 ‘원안’ 처리… 심상정 “이렇게 기막힌 법은 처음”
그러나 의원들 뜻대로 할 순 없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부산 민심을 걱정한 민주당 지도부는 ‘원안 통과'를 압박했다. 19일 소위에서 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원안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17일엔 예타 면제 조항 삭제에 “동의한다”고 했다가, 입장을 바꾼 것이다. 조응천 의원도 예타 면제에 반대하는 송언석 의원을 설득했다고 한다. 결국 여야 의원들은 19일 소위에서 예타 면제 조항을 다시 살려 전체회의로 넘겼다.
19일 전체회의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강하게 반발했다. “네 번 국회의원 하면서 낯부끄러운 법안이 통과되는 것도 많이 봤고, 선심성 공약이 난무하는 것도 봤다. 그런데 이렇게 기가 막힌 법은 처음 본다. 절차상 유례가 없고, 세계에 바다를 매립해서 외해에 짓는 것도 유례가 없고, 부등침하 구간에 활주로를 짓는 것도 유례가 없다. 이런 것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밀어붙여서 하는 게 매표 공항이 아니고 도대체 뭐냐.” 그러나 심 의원 혼자의 힘으로 거대 양당을 이길 순 없었다. 법안은 사실상 원안대로 전체회의에서 의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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