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활용한 두 여성 작가 전시회
“한시도 독립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는 언제부터 조선의 독립을 생각해왔느냐는 일본 검사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항일여성단체인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사건을 심문하는 자리에서다. 김마리아는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을 맡아 임시정부에 자금을 전달하고 조직을 확대하던 중, 동료의 배신으로 검거돼 심한 고문을 당했지만 흐트러짐이 없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큰 조명을 받지 못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김마리아를 비롯해 강주룡, 권기옥, 김명시, 김알렉산드라, 김옥련, 남자현, 박자혜, 박진홍, 박차정, 안경신, 이화림, 정정화, 정칠성 등이다. 이들을 불러 모은 건 여성주의 미술의 대가인 윤석남 화백. 윤 화백은 역사 기록을 토대로 이들의 모습을 그려 대중에 선보였다.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전시다.
“김마리아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두려움이 없는 분 같았어요. 고문을 심하게 당해 한쪽 가슴을 잃기까지 하셨죠. 그래서 그림 속 포즈는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것처럼 동작이 크고 진취적으로 그렸어요.”
작업은 한지 위에 채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서양화로 미술계에 발을 들인 윤 화백은 10년 전부터 채색화를 고집해오고 있다.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윤두서 자화상을 본 순간 온 몸이 얼어붙는 듯한 경험을 한 게 전환점이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은 채 우리의 것을 너무 무시해왔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동안 바보로 살아온 것 같아 그 때부터 서양화는 접었죠.”
삼청로를 따라 5분 가량 걷다 보면 또 다른 여성 화가의 한지를 이용한 전시를 만날 수 있다. 해외 여러 기관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국제적 명성을 쌓고 있는 김민정 작가의 ‘Timeless’ 전시다.
김민정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대뜸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걸 어떻게?’ 태운 한지를 겹겹이 쌓아 올린 그의 작품은 눈을 의심케 한다. 한 겹 한 겹에 녹아 든 정성을 생각하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특히 앵무조개의 외양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Nautilus’는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줘 시선을 오래 머물게 한다. 동그랗게 잘라낸 조각으로 만든 작품과 동그라미를 자르고 남은 종이로 제작한 작품을 ‘Couple’이라는 제목으로 동시에 전시한 것도 인상적이다.
인쇄소를 하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작가에게 한지를 이용한 작품은 ‘종이놀이의 확장’이다. 김민정 작가는 "어릴때 종이가 많으니까 자르고 남은 종이로 딱지도 만드는 등 여러 가지를 하며 놀았다"며 "유학을 가서도 결국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건 한지라고 생각해 지금까지 한지 작업을 계속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는 홍익대와 동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으며, 이탈리아 밀라노 브레라국립미술원에서 유학했다.
작가의 작업 과정은 일종의 수행처럼 느껴진다. 김민정 작가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한지를 태우고 붙이기를 반복한다. “작업을 하면 평화롭고 고요한 마음 상태가 돼요. 제가 작업하며 느낀 것들이 관객들에게도 전달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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