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개봉 앞두고 감독 배우들 화상기자회견
영화 ‘미나리’의 감독과 주연배우들이 오랜만에 모였다. 26일 오전 열린 화상기자회견을 위해서였다. 정이삭 감독과 배우 스티븐 연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배우 윤여정은 캐나나 밴쿠버에서, 한예리는 서울에서 기자회견에 따로 같이 참여했다. 몸은 서로 멀리 있어도 네 사람은 한자리에 있는 듯 웃음을 나누며 즐거워했다. 네 사람이 들려주는 제작 뒷이야기와 소회에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기도 했다. 올해 오스카 수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미나리’는 팀워크가 빚어낸 수작임을 엿볼 수 있었다.
내달 3일 국내 개봉하는 ‘미나리’는 미국 아칸소주에 착근하려는 한국인 이민 가족의 분투를 그렸다. 아메리칸 드림에 젖은 아버지 제이컵(스티븐 연)과 가족을 위해 모든 걸 감내해내는 모니카(한예리), 사춘기를 앞둔 딸 앤(노엘 조), 심장이 좋지 않은 막내아들 데이비드(앨런 김), 손자 양육을 돕기 위해 한국에서 온 모니카의 어머니 순자(윤여정)의 사연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미나리’는 재미동포 2세 정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지난해 선댄스영화제 미국 영화 부문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28일 오후(현지시간) 열리는 제78회 골든글로브상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라있다. 정 감독은 “제 개인적 이야기가 호평받는 게 놀랍고 신기하며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며 “가족이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세파를 헤쳐나가는, 보편적인 인류의 이야기라 공감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윤여정) 선생님과 스티븐, 예리, 애런 등이 스토리 안에 사람들이 들어와 즐길 수 있도록 각자의 역할을 해줬다. 인간미가 묻어나는 연기를 섬세하게 표현해줬다”며 공을 배우들에게 돌렸다.
영화는 저예산으로 미국 오클라호마 털사에서 한여름에 촬영되면서 적지 않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평균기온이 40도인 상황에서 주요 촬영 공간인 트레일러는 한증막이나 다름없었다. 윤여정이 “동시녹음이라 촬영 중일 때는 에어컨을 작동시킬 수 없었다”며 “빨리 일 끝내고 시원한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어려움 속에도 웃으며 촬영할 수 있었던 건 ‘밥심’ 덕이었다. 윤여정과 한예리가 묵는 숙소가 회식 장소가 되곤 했다. 스티브 연은 “밥을 먹기 위해, 빨래를 하기 위해” 자주 놀러 갔다. 윤여정은 “촬영장이 아무리 더워도 숙소에 가서 맛있는 밥을 먹으면 다 잊혔다”고 했다. 윤여정에게 ‘미나리’ 시나리오를 처음 건넸던 이인아 프로듀서가 “밥순이”(윤여정)였다. 휴가를 포기하고 숙소에 머물며 음식을 했다. 이 프로듀서는 독일 유명 감독 빔 벤더스와 협업으로 잘 알려졌다.
언어장벽이 오히려 결속력을 형성했다. 한예리는 “촬영 전 문어체로 번역된 한국어를 구어체로 바꾸는 회의를 위해서도 자주 모여 이야기했다”며 “덕분에 좀 더 빠르게 촬영하고 시나리오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미나리’는 네 사람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겼다. 정 감독은 “영화를 만들며 스트레스가 심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며 “마지막 촬영이 끝난 후 모두를 크게 포옹했는데, 하나의 가족 팀으로 해낸 것이 기뻐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스티븐 연은 “놀라운 순간이 많았는데, 그 중 함께 밥을 먹으면서 더 깊이 교감하고 말을 나눠서 좋았다”고 했다. 한예리 역시 ”촬영을 끝낸 후 했던 식사가 기억에 남고 가장 그립다”며 “코로나19 상황이 끝나고 다 같이 모여 밥 먹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윤여정에게는 특히 ‘미나리’가 “경악을 금치 못할” 영화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임한 영화였는데, 북미에서만 배우상 26개를 안았다. 윤여정은 “상패는 아직 하나밖에 받지 않아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서도 “미국은 넓은 나라라서 상 역시 많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며 웃었다. 그는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상영된 영화를 봤을 때 제게 (한)예리는 뭘 잘못했나, 스티븐 (연)은 뭘 잘못했나 그것만 보이던데 미국 관객 모두가 울어서 왜 그런가 궁금했다”며 “무대 올라가 기립박수를 받으니 그제서야 눈물이 났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애써서 좋은 결과를 내놓은 걸 보고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윤여정은 “제가 며칠 일찍 촬영이 끝난 후 숙소에 머물고 있는데 정 감독이 스태프를 다 데리고 찾아와 모두가 큰절을 했던 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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