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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영업규제 9년... 남은 건 ‘을(乙)들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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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영업규제 9년... 남은 건 ‘을(乙)들의 전쟁’

입력
2021.03.03 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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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 밀린 대형마트도 '을' 신세 전락
마트 임대매장 소상공인 피해도 부각
온 vs 오프라인 경쟁구도 속 갈등만 그대로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 매장 앞에 정기휴무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오대근기자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 매장 앞에 정기휴무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오대근기자

대형마트가 월 2회 의무 휴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9년째다. 지난 2012년 이같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이 이뤄진 배경에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와 경쟁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중소상인의 항변이 있었다.

하지만 9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형마트, 슈퍼마켓, 전통시장 등으로만 구분되던 유통시장은 어느새 온라인 유통시장이란 공동의 경쟁자와 마주 서게 됐다. 특히 코로나19를 계기로 유통의 중심축은 갈수록 온라인으로 넘어가는 추세다.

한때 '갑'으로 불린 대형마트는 점포 축소와 구조조정을 거듭하는 '을'의 처지가 됐다. 요즘은 전통시장을 포함한 골목상권과 똑같이 된서리를 맞고 있음에도, 과거의 규제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을이 된 대형마트

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2012년 3월 시작된 대형마트 규제가 9년째를 맞았지만 중소상인의 경영 여건은 여전히 어려운 실정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파악한 개인사업자 대출잔액은 2017년 약 315조원에서 2018년 366조원, 2019년 406조원으로 급증했다. 코로나19가 몰아친 지난해에는 매출액 감소로 대출 규모가 더 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대형마트가 중소상인 매출을 흡수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KOCA)가 집계하는 대형마트 출점 수는 2011년 382개, 2015년 450개, 2018년 484개 등으로 꾸준히 늘다가 2019년 455개로 줄었다. 지난해부터는 구조조정이 가속화되고 있다. 한 때 대형슈퍼마켓(SSM)을 앞세워 골목상권까지 싹쓸이한다는 비판을 받던 유통 대기업조차 전자상거래(e커머스) 중심으로 재편된 유통시장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9년 전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전통시장으로 대분됐던 오프라인 유통시장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온라인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됐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뉴스1

9년 전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전통시장으로 대분됐던 오프라인 유통시장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온라인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됐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뉴스1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대형마트는 주중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는 모든 영업이 금지되고 격주에 하루씩 문을 닫는다. 심야영업 제한과 의무휴업은 온라인 영업에도 적용돼 온라인 주문 처리나 배송도 할 수 없다. 현행법은 매장 문을 잠그고 안에서 포장과 배송만 해도 영업 활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에 매장에서 출발하는 새벽배송은 꿈도 꿀 수 없다.

매장 효율성이 떨어지니 폐점이 속출한다. 롯데마트는 125개 매장 중 지난해 12개를 정리했고 앞으로 5년 내 50개 매장을 없앨 전망이다. 이마트도 대형마트보다 트레이더스, 노브랜드 등 전문점 중심으로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홈플러스 역시 잇단 점포 매각으로 자산 유동화 작업을 추진 중이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어느덧 약자가 된 대형마트가 휴업일에 물류센터조차 못 쓰게 하는 건 비합리적”이라며 “이런 상황이면 온라인쇼핑몰도 정기적으로 쉬게 하자는 주장이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말했다.

“마트 임대매장 소상공인은 누가 구제하나”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는 오히려 소상공인을 제재하는 역설을 낳았다. 대형마트에서 임대매장을 운영하는 소상공인과 제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들도 규제 여파로 매출이 줄었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10월 서울·경기 지역 150개 대형마트 내 임대매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임대매장의 98.7%를 운영하는 소상공인은 의무휴업 이후 86.6%가 매출이 줄었다고 답했다. 매출이 ‘20~30% 감소했다’는 응답도 23.3%나 됐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대형마트에 입점한 개인사업자, 중소기업 등도 영세한 건 마찬가지인데 이들은 누가 구제해주나”라고 반문하며 “대형마트는 주말 장사로 먹고사는데 일요일 장사를 못 하게 되면서 개인사업자의 경우 생존 위협까지 느끼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소비자도 갸우뚱

소비자도 실효성에 의문을 표한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주인자(49)씨는 “대형마트 휴업으로 장보기에 불편함을 느낀다. 원하는 곳에서 구매할 소비자의 선택권을 오히려 침해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대형마트 옥죄기보다는 전통시장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e커머스 이용자가 급증한 데다 오프라인 시장에서는 이미 동네 곳곳에 들어선 대규모 식자재마트들이 강자로 부상한 탓이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거주하는 심모(32)씨는 “구매 채널이 다양한데 전통시장의 어려움을 한 업태의 책임으로 돌리는 건 이분법적 사고”라며 “편의성 강화 등 전통시장 내부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젠 복합쇼핑몰까지… 끝나지 않은 갈등

최근 국회에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이런 소비자 편익 감소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개정안에는 복합쇼핑몰에도 월 2회 의무 휴업 적용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이에 대해 “복합쇼핑몰을 영업제한 대상에 포함시키되, 대기업이 운영하지 않는 복합쇼핑몰 등은 예외로 하자”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의 지난달 국회 통과가 불발되자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은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유통재벌의 논리만 받아들이지 말고 노동자의 근로환경을 고려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조합원들이 지난달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무휴업을 확대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조합원들이 지난달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무휴업을 확대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전문가들은 복합쇼핑몰 의무휴업이 전통시장 등 골목상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가설은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김도현 교수는 “막연히 ‘소상공인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대형마트 영업제한의 성적표를 이제는 받아볼 시간”이라며 “객관적 데이터에 근거하지 않은 정책 유지·확대는 책임윤리 부족으로 비친다”고 지적했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도 “의무휴업 시행 9년의 효과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면서 “소비자의 요구와 특성을 고려해 법을 탄력적으로 보완하고 수정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유통시장의 업종별 체질 개선이 급선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갈수록 온라인이 대세가 되는 흐름에서 오프라인 유통시장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 교수는 "온라인이 판매 중심이라면 오프라인은 체험과 휴식을 포함한 경험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연 기자
맹하경 기자
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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