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분광학과 광기술 분야를 연구하는 고재현 교수가 일상 생활의 다양한 현상과 과학계의 최신 발견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알기 쉽게 조망합니다
최근 휴대폰이나 TV 화면에서 나오는 블루 라이트(blue light)에 대해 경고하는 뉴스를 종종 접한다. 스크린의 블루 라이트가 수면을 방해하거나 노안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젊은이들의 안과 관련 질환이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디스플레이에는 보통 블루 라이트 필터라는 옵션이 달려 있어 블루 라이트의 감소에 활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블루 라이트의 원인이 되는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는 21세기 기술 혁신의 아이콘 중 하나다.
공학 분야에서 혁신적 업적을 거둔 이에게 상과 100만파운드(약 17억원)의 상금이 수여되는 엘리자베스 여왕 공학상이 올해는 적색 LED를 발명한 닉 홀로니악, 황색 LED를 발명한 조지 크래퍼드, 청색 LED를 발명한 아카사키 이사무와 나카무라 슈지, 그리고 LED 관련 공정을 개발한 러셀 드퓌 등 다섯명에게 돌아갔다(그림1). 이 중 청색 LED를 발명한 이사무와 슈지는 2014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그만큼 청색 LED의 발명이 인류의 삶에 미친 영향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겠다.
흔히 빛을 내는 반도체라 불리는 LED는 가시광선 중에서도 파장이 긴 빨간색부터 발명되기 시작했다. 1962년 빨간색 LED 발명에서 시작해 1969년 노란색 LED, 70년대 녹색 LED의 등장 후 파장이 짧은 청색 LED가 1993년 시장에 나오기까지는 무려 20여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고체인 LED는 어떤 원리로 전기에너지를 빛으로 바꾸는 것일까.
LED가 빛을 내기까지...
LED는 반도체로 만든다. 반(半)도체는 이름 그대로 절반쯤 도체인 물질이다. 도체는 전류를 매우 잘 통하는 물질로서 전기 도선 등으로 사용된다. 구리 같은 금속들이다. 반면에 나무나 플라스틱처럼 전류를 전혀 통하지 않는 물질은 부도체라 부른다. 반도체는 도체와 부도체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 전류가 적당히 흐르는 물질들을 말한다. 실리콘(Si)이 대표적인 예다.
LED를 구성하는 다이오드(diode)란 두 개(di-)의 전극(-ode)이 연결된 소자라는 뜻이다. 즉 LED는 p형 반도체와 n형 반도체라는 두 종류의 반도체를 접합해서 구성한다. 반도체에 전기적 성질을 부여하는 방법은 불순물을 첨가하는 것이다. 불순물의 종류에 따라 여분의 전자가 만들어져 n형(negative 형) 반도체가 되거나 전자가 부족한 빈자리가 생기는 p형(positive 형) 반도체가 된다.
다이오드에 건전지 등을 연결해 전압을 걸면 n형 반도체의 전자가 다이오드의 접합면으로 흘러가 p형에서 온 빈자리를 채운다. 그 과정에서 풀려나는 에너지가 빛의 형태로 나오는 게 LED란 발광 소자다(그림2). LED의 발광 원리는 이렇게 비유할 수도 있다. 경사면의 언덕 위에 공들이 놓여 있다고 하자. 경사면 아래에는 이 구멍들이 들어갈 수 있는 둥근 홈들이 있다. 언덕 위 공들은 n형 반도체 속 전자로, 아래의 둥근 홈들은 p형 반도체에 있는 빈자리로 생각할 수 있다. 언덕 위 공을 밀면 굴러떨어져 아래의 홈을 채우듯이 LED에 전압을 인가하면 전자가 n형 반도체에서 p형 반도체 쪽으로 흘러가며 만나는 빈자리를 채운다. 언덕 위에서 실제로 공을 굴리면 공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며 운동에너지가 발생함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이와 비슷하게 LED 내 전자도 빈구멍을 채우며 에너지를 내놓는다. 그것이 LED의 경우에는 빛이다.
더 높은 곳에서 공을 굴리면 바닥에 닿을 때 공의 속도가 훨씬 빨라지고 운동에너지도 더 커진다. 이와 비슷하게 반도체의 종류를 바꾸면 LED 내 전자가 빈자리와 결합하며 내놓는 빛 에너지도 달라진다. 전자가 방출하는 빛 에너지가 클수록 파장이 짧아지고 빛의 색깔은 청색과 보라색 쪽으로 다가간다. 요즘은 가시광선보다 에너지가 더 높은 자외선 LED도 다양한 분야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청색 LED로 백색광 만들기
1993년 청색 LED의 등장이 왜 중요했을까? 그건 LED를 이용해 백색 광원을 구현하기 위해선 청색 LED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백색광을 만들려면 빛의 삼원색인 빨강, 녹색, 청색광이 고르게 섞여야 한다. 1990년대 이전에는 빨강, 노랑, 녹색을 내는 LED만 존재했기에 LED로 백색 조명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조명의 혁명이 될 백색 LED의 등장은 오직 90년대 청색 LED의 등장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청색 LED로 백색 LED 조명을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그림3). 기존에 존재하던 적색 LED, 녹색 LED와 청색 LED를 조합해서 같이 켜는 것이 한 방법이다. 이 경우 세 빛이 섞이며 자연스럽게 백색광이 만들어진다. 다른 방법은 청색 LED 위에 빛의 색상을 바꾸어 주는 형광체란 물질을 올리는 것이다. 형광체는 청색 빛의 에너지를 일부 흡수한 후 이를 파장이 긴 다른 색의 빛으로 바꾸어 방출한다. 청색 LED 위에 청색을 노란색으로 바꾸는 황색 형광체를 코팅하거나 적색 형광체와 녹색 형광체를 섞어서 올리기도 한다. 황색 빛에는 녹색과 적색 빛의 성분이 있기 때문에 청색 LED가 내는 청색 빛과 섞이면 백색광이 된다.
이렇게 백색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게 되면 디스플레이에서 블루 라이트 필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그림4·5). 디스플레이의 화소(pixel)에는 적록청 등 빛의 삼원색이 방출되는 세 개의 부화소(sub-pixel)가 있다. 이때 블루 라이트는 청색 부화소에서 나오는 청색광을 일컫는다. 따라서 블루 라이트 필터는 청색 부화소의 빛을 인위적으로 줄여 블루 라이트의 양 자체를 줄인다. 이렇게 되면 디스플레이에서 방출되는 영상에 청색이 전반적으로 부족해지고 백색의 색감도 다소 노르스름한 색으로 바뀐다. 색감의 변화를 감수하고 청색을 줄여 수면 방해 요인을 줄이는 것이 블루 라이트 필터의 핵심 기능이라 할 수 있다.
기술적 혁신으로 가는 길
1962년에 적색 LED를 발명한 홀로니악은 당시 한 잡지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는 LED를 실용적인 백색 광원으로 개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무려 반 세기 정도가 지나서야 그의 예측이 실현되며 LED에 기반한 백색 조명의 대중화가 이루어진다. 오늘날 LED의 응용 분야는 디스플레이, 일반 조명의 영역을 넘어 다양한 산업 공정에 쓰이는 특수 조명, 경관 조명, 살균용 광원이나 가시광 무선통신 등 다양한 분야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LED 개발 과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최초의 전기등인 백열등의 발명가 에디슨이 설립했던 GE사에서 적색 LED를 발명한 홀로니악은 역설적으로 GE의 경영진이 그의 연구를 별 이익이 되지 않을 것으로 여기면서 회사를 관두게 된다. 1970년대 초 미국 RCA사의 엔지니어였던 마루스카는 청색 LED의 개발에 상당한 진전을 보였으나 회사의 경영 악화 및 중지 결정에 따라 연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일본 중부의 중소기업인 니치아화학의 연구원이었던 나카무라 슈지는 상대적으로 운이 좋았다. 그는 당시 노부오 오가와 회장의 지원으로 청색 LED의 개발을 시작해 중소기업으로서는 상당히 큰 규모의 예산을 지원받았다.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난 후에는 상황이 악화되면서 연구 중단의 압박이 심했다. 그렇지만 뚝심으로 연구를 밀어붙인 슈지는 결국 청색 LED의 개발과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니치아화학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당시 슈지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오가와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엔지니어라면 책을 읽은 후에는 중지하고 생각을 해야 한다. 그는 생각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나의 원칙은 그와 같은 사람이 연구를 지속하도록 놓아두는 것이었고 그러면 그는 해낼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즉 그는 능력 있는 연구원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중요시했던 것이다.
오늘날 위대한 발견이나 발명은 때론 수백, 수천명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거대한 협업을 통해 달성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LED 개발의 역사처럼 소수의 인원이 엄청난 노력과 집중을 통해 이루어 내는 기술적 혁신도 있다. 그 토대는 가능성을 품은 이들이 실패할 수 있는 기회까지 포함해 자율과 권한을 가지고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게 지원해 주는 제도적 뒷받침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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