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제로웨이스트 실천가’라고 말하는 주부 이수경(가명ㆍ42)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새 세탁세제를 사지 않고 있다. 마트에서 내용물만 구입해 빈 통에 채워(리필) 오기 때문이다. 세제를 다 쓰고 남는 플라스틱 용기는 이씨에게 골칫거리였지만 리필을 이용하면서 고민은 금세 해결됐다. 이씨는 “리필로 세제를 더 싸게 살 수 있고,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성취감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 의식 높아지면서 전국 70곳으로 늘어
빈 용기에 내용물만 담아갈 수 있는 ‘리필스테이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18년 ‘쓰레기대란’과 지난해 코로나19발 ‘배달플라스틱 대란’ 등을 겪으며 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위기의식이 커졌기 때문이다. 2016년 국내 첫 리필스테이션 ‘더 피커’가 문을 열었고, 지난 5년 새 그 수는 전국 약 70곳으로 늘어났다.
리필스테이션에서 주로 판매하는 것은 세제ㆍ샴푸 등 플라스틱 용기가 발생하는 소모품이다. 화장품을 덜어 팔거나 견과류, 양념 등 음식물을 파는 곳도 있다. 세제를 사지 않고 리필할 경우 한번에 0.1㎏의 플라스틱을 절감할 수 있다. 하루에 10명이 리필을 이용하면 한 해 약 300㎏의 플라스틱을 덜 쓰는 것이다.
내용물만 공급받기 힘겹고, 규제 때문에 확대 한계
대부분의 리필스테이션은 영세한 규모다. 아직 이용자가 적은 데다, 제품을 공급받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의 리필스테이션 덕분愛(애)의 이윤경 대표는 “세제나 견과류 등을 포장용기나 비닐 없이 판매하는 기업이 없어서 상품을 구하다 지친다”며 “간혹 ‘100개 이상 사면 내용물만 주겠다’는 곳이 있는데, 작은 매장이라 수백만원씩 들여가며 대량 구입을 하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규제 탓에 다양한 제품을 팔기도 어렵다. 화장품을 소분해 팔려면 ‘맞춤형화장품조제관리사’라는 국가자격증이 필요해 진입장벽이 높다. 음식과 세제를 같이 팔려면 원료처리, 제조 가공 등에 필요한 작업실을 따로 두는 등 큰 매장을 구해야 하는 것도 난관이다.
초소형 매장이 절반...대기업 참여 늘어야
현재는 대도시 외에는 리필스테이션을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현재 영업 중인 곳의 절반은 카페나 환경단체 사무실 한 켠에 자리한 초소형 매장. 때문에 리필스테이션을 이용하려는 소비자들은 차를 타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수고를 감수하기도 한다.
대기업의 진출은 리필문화 확산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마트는 지난해 9월부터 수도권의 8개 매장에서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리필 판매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지난해 10월 수원에 리필스테이션을 열었다. 양래교 알맹상점 공동대표는 “대기업의 리필스테이션 운영으로 리필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제품 공급방식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대형마트의 리필이 마케팅 수단에 그치지 않고 보다 다양한 상품을 포장 없이 판매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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